[마키칸] Rubato

- 자전거 타는 애들 모두가 음대 다니고 있는 au 

- 바이올리니스트 마키시마 x 손목 부상으로 피아노 그만 두고 조율하는 칸자키상








***


rubato


<숨겨진>이라는 뜻. 템포 루바토(tempo rubato)의 준말. 연주할 때 전체의 기본 템포를 변화시키지 않고, 한 프레이즈 중 각 음표의 길이를 신축시키는 방법. 주로 약간의 템포 단위 변화가 주는 긴장감에 의해 선율적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며, 즉흥적 요소가 강하다.






***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서툰 연인은 사랑스럽다. 부탁할 게 있을 때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애써 어깨나, 어깨 아래의 허리께를 바라본다. 해 주세요, 라고 말할 때는 숨을 쉬는 것도 서툴다. 어절과 어절 사이에 급하게 한두 번을 들이키면서 미처 다 못 마신 숨은 목으로 삼킨다. 한 문장을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칸자키는 눈 앞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부탁이 있어요, 라고 말하며 불러 세우더니 십 분 째 이런 상태였다.

  마키시마는 친절하다. 상냥하다. 제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고 싶을 때,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 좀 더 이기적으로 굴면 좋으련만 그게 ‘부탁’의 형식이 되면 그러질 못한다. 초견을 도와주거나 악기를 조율해주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인의 이름으로 조금만 살랑거리면 되는 걸 하지 못해 우물쭈물하곤 했다. 그 부분이 귀여운 거지만, 스스로의 욕망과 스스로의 상냥함 사이에 자기 자신이 끼어 만들어내는 러시아워를 볼 때 마다 기분이 미묘했다.

   칸자키는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사라사테도, 파가니니도, 비예냐프스키도,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자기만의 색으로 움켜쥔 유망주는 여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섹시하고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색을 내는 주제에 조명이 제 머리 위에서 빛나지 않으면 이렇게 우물쭈물 거리곤 했다. 그의 나쁜 버릇이었다. 오해받는 걸 즐기는 타입이 아니면서도 굳이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 끝없는 자기관철은 무대 위에, 향상심은 라이벌과의 콩쿠르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그게… 그러니까요.”


   그는 다시 시선을 피했다. 암록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이 순간의 그 마저 사랑하고 있지만 계속 우물쭈물하는 건 답지 않았다. 졸업 연주회의 악기 조율을 해 달라고? 칸자키는 대충 짚어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도리질했다. 제법 힘든 부탁을 하고 싶은 건지, 그는 여전히 우물쭈물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침대 위에서의 본능과 이성 사이의 러시아워가 낫겠는걸. 칸자키는 스스로 팔짱을 꼈다.

   마지막 졸업 연주회의 조율은 부탁하지 않아도 해 줄 생각이었다. 자랑으로 여기는 빈티지바이올린이 최상의 소리를 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기재 트러블로 오시우리 콩쿠르에서 한 방 먹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분했다. 하코네의 토도 진파치가 2위없는 1위라도 해주길 바랐건만 그의 연주는 녹록치 않았다. 칸자키는 마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얇은 입술이 보였다. 달싹거리다가 다시 닫히는 그 수줍음을 바라보다가, 그는 그의 졸업 과제곡을 떠올렸다.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를 하겠다고 들고 왔다. 곡 해석은 나무랄 데 없었다. 오시콩의 과제 곡이었기 때문이다. 리벤지? 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을 떠올리다가 칸자키는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제 연인은 아무래도 반주자를 제게 맡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키시마의 연주는 본디 자유롭다. 템포와 셈여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룹다. 메조포르테를 포르티시모로 해석하는 일도 잦다. 그런 그의 반주는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그 날의 날씨, 습도, 기분, 그의 음악을 변하게 하는 건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작용이었다. 음악은 악보를 따라가야 하지만, 그 악보를 해석하는 건 전적으로 그 자신이었다. 콩쿨에서 운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마키시마 유스케』라는 별종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독특하다. 악보대로의 정석적인 연주를 하는 토도 진파치와는 사뭇 다른 반짝거림이다. 변칙적인 스타일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으니 반주자를 구하는 게 어려운 것도 당연했다.

   여태까지는 그의 반주는 킨조가 전담했다. 지휘과이면서도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인 그는 마키시마가 어떤 연주를 하던 간에 맞춰주기 편했다. 마키시마의 ‘왜’를 해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졸업 연주회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로 빠진다. 자기 오케스트라를 갖지 못한 학생에게 졸업 연주회의 지휘자 자리란 탐나는 성배일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마키시마의 콩쿨은 지휘와 피아노가 겹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칸자키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쉬듯 웃으면서 마키시마아, 하고 불렀다. 릴렉스 해. 라고 말하면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손길에 마키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칸자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였다. 칸자키는 다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마키시마는 상냥하다. 그러니까, 저렇게 우물쭈물거리는 게 분명했다. 제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번 부상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 둔 사람한테 다시 부탁할 수 없는 것이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고 싶을 법도 한데, 그는 사랑 앞에서는 언제나 진솔하고 진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부탁도 쉽게 하지 못하고 수십 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실 한쪽 문을 막아가면서. 칸자키는 강의실의 반대편 문으로 빠져나가는 1학년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마키시마는 언제나 눈에 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칸자키는 자신의 손목을 쥐었다. 놀리지 말아주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마키시마는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놀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재차 다가왔다. 피아노 반주를 부탁하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칸자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 손목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는 그의 템포가 일정치 못하다는 걸 고려해도 십삼 분 정도는 꼬박 걸린다. 그 날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십오 분 정도를 반주해야 한다. 사라사테가 정리한 숨 막힐 정도로 섬세한 음들은 풍부하게 표현되어야만 한다.

   반주자는 솔리스트를 가리면 안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솔리스트의 연주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이해하고 섬세하게 뒷받침해야만 한다. 한 번 맞춰보는 걸로는 안 될 것이다. 그처럼 변칙적인 연주자와는 여러 번 맞추면서 그의 평균을 뽑아야 한다. 그는 킨조와 마키시마의 연습량을 떠올리고 혀를 내둘렀다. ‘초절기교’가 필요한 곡은 아니지만 손목이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칸자키는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눈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는 그가 보였다. 안 돼, 라고 말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사랑해요, 라고 말하면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수락할 것 같아 무서웠다. 상냥한만큼 망설였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낸 그를 멈추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은 재능 덩어리가 어느 정도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 언제나 궁금해 하는 법이었다. 칸자키는 뒷목을 쓸었다. 이런 타입을 더 좋아하면 이래서 곤란하다. 품 안에 가둘 수 있는 것 이외의 것들까지 주고 싶어진다.

   그의 미숙함마저 눈에 담았고,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저를 생각하는 그 모습까지. 마키시마 유스케라는 별종을 모두 좋아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까지 고려해주는 것이다. 카르멘 판타지의 처음은 피아노로 연다. 그 여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를 생각하며 칸자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시를 해주면 좋겠지만 무대에 올라간 순간 뒤를 돌아보는 것 마저 감점이 될 수 있다. 졸업 연주회는 그의 4년을 대변하는 장소다. ‘자유로움’을 뽐낼 수 있는 곳을 제가 망치면 안 된다.

   13분을 몇 회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일까. 칸자키는 여전히 제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꼼질거린다. 무리한 부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에 제가 조금 더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저기, 라고 입을 여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라고 말하는 그는 다시 숨을 헛, 하고 들이켰다. 후, 하고 내뱉는 숨은 무대 위에서와 다르게 불규칙적이었다. 평소 마키시마가 가지고 노는 리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웃음이 삐져나왔다.


   “졸업 연주회가, 있는데요.”

   “응.”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알면서도 말을 먼저 꺼내주지 않는 것은 연상의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할 반주자로 저를 고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탐욕스럽게 먹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칸자키는 다시 스스로, 팔짱을 꼈다. 마키시마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보여주지 않는 호흡. 그 긴장한 모습을 천천히 훑으며, 칸자키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결심한 순간 그는 언제나 똑바로 사람을 쳐다본다. 나름대로의 합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상냥함과 욕망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건 나름대로 고양되는 요소였다. 복도에 사람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그 예기치 못한 소란스러움에 당황했는지, 저기, 하고 다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다급하고 황급했다. 졸업 연주회가 있는데, 하고 다시 반복하는 론도는 피네로 돌아가 다른 주제를 연주할 것이다. 칸자키는 그의 요청을 얌전히 기다렸다.

   여즉 고민한 얼굴은 아는 멜로디. ‘그래’ 라고 대답했을 때의 표정은 아직 모르는 선율. 어쩐지 멋쩍은 느낌이 들어 칸자키는 볼을 긁었다. 이번 졸업 연주회가… 마키시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카락을 다시 귀 뒤로 넘겼다. 복도에 있는 연습실 중 한 곳에서 라벨의 피아노소나타 G장조 1악장의 피아노 부분이 울렸다. 피콜로와 플루트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발랄한 음률이 마치 제 앞의 수줍은 그이 같은 얼굴을 하고 울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같이 살래요?”




- 2018. 10월 18일 작성

'Cosm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토도] 여름. 박하 맛.  (0) 2018.10.28
[유우아시] 왼손 악보와 오른손 악보 사이  (0) 2018.10.28
[마키칸] 開  (0) 2018.10.28
[신토도] 무제  (0) 2018.10.28
[마나토도] 無音  (0)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