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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아시] 왼손 악보와 오른손 악보 사이2018. 10. 28. 13:06
- 3학년 인터하이 후 아시키바가 지휘자로 진로를 틀었습니다. - 때문에 미래조작 요소 있음. *** ― 『Camille Saint-Saёns, Danse macabre, Op. 40』,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무대 옆으로 난 문에서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시키바 타쿠토 군,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라는 아나운스가 다시 울렸다. 안내방송이 이어질 때 까지 청중은 계속 박수를 쳤다. 유토는 땀이 나는 손을 제 무릎에 얹었다. 힘이 바짝 들어가서 의자에 허리를 붙이고 앉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키 큰 남자의 어깨가 내려갔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생상스, 라는 이름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음악 시간에 들었나, 생각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유토가 고민하는 사이 그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멀리서 들리는 구두소리에 유토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레이스는 아니지만 존경하는 선배의 무대였다. 이번에는 끝까지 봐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앞선 지휘자들의 연주에서 모두 잠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클레식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건 견딜 수 없이 지루했다. 신카이 유토에게 있어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 선배뿐이었다. 그는 지휘봉을 꼭 쥐고 있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20cm 정도 되는 작은 단상은 로드레이스의 개인 일 등 시상대보다 훨씬 낮았지만, 그 높이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높은 자리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아키시바가 악보를 정리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토는 주름지지 않은 연미복을 응시했다. 그의 몸에 맞춘 것처럼 갈라지지 않은 뒷자락이 그의 무릎 뒤 까지를 덮고 있었다. 정장을 맞추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연미복의 소매는 그의 손에, 바지 밑단은 그의 복숭아뼈에 꼭 맞았다. 분명 이 콩쿠르를 위해서 많은 시간 준비했던 거겠지, 생각하며 유토는 입술을 입 안으로 숨겼다. 하코네 학원 기숙사는 방음이 좋지 않다. 음악실은 학교에 있어서 오후 일곱시가 지나면 폐쇄된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공부를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와 자신이 생각보다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높은음자리표의 ‘도’와 낮은음자리표의 ‘도’, 같은. 아시키바는 뒤를 돌았다. 청중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평소와 다르게 왁스를 발라 이마를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노란색 조명이 그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든 그는 무대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토는 손을 들었다. 뒷사람이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시키바와 눈이 마주쳤다. 부드럽게 웃는 모습에 유토는 손을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괜히 부끄러워 유토는 팜플렛을 들여다보았다. 「비공개로 진행된 1, 2차 예선을 모두 퍼펙트로 통과한 새로운 왕자.」, 「자유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카리스마」, 「메트로놈같이 정확한 박자감과 유려한 표현력을 갖춘 혜성 같은 신인」. ‘하코네 학원의 에이스’라는 말 대신 적혀있는 다른 수식어들은 매우 간지러운 것들뿐이었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이란 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클레식이라도 들어두는 건데. 유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아는 선배가 저런 진지한 표정을 하고 서 있는 걸 보는 건 정말로 어색했다. 익숙한 사람임에도 달라 보였다. 왁스를 발라 까 올린 머리카락과 드러난 이마가 보였다. 눈동자 색과 표정은 더욱 선명했다. 그와 저 사이에 거대한 선이 그어진 것 같았다. 로드레이스의 1등과 2등 사이에 그어진 것보다 더 깊은 크레바스를 떠올렸다. 박수가 멎자 아시키바는 뒤를 돌았다. 연미복 끝자락이 흔들렸다. 하코네 학교의 유니폼과 달리 깊은 검은색이었다. 생각보다, 검은색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란 걸 지금 깨달았다. 그것 또한 이질적인 기분이었다. 아시키바는 손을 들었다. 그의 손끝에 들린 가느다랗고 긴 은색 지휘봉이 반짝였다. 모든 주자들이 악기를 무릎 위에 세웠다. 그것이 퍽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는지 그는 그랜드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피아노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현악기들이 움직여, 저물어가는 날을 표현했다. 유토는 숨을 들이켰다. 아시키바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지시에 맞추어 첼로가 피치카토 음을 울렸다. 아시키바는 박자를 지휘하면서 콘서트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강렬하게, 흔들림 없는 보잉으로. 라는 말과 함께, 메인 선율이 울렸다. 이제부터 아키시바의 왕국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유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이 흔들렸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페달을 밟는 것 마냥 음은 뻗어나갔다. 콘서트마스터의 솔로에 집중하면서도 오케스트라에서 신경을 때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소리친다. 그는 자신이 이데아로 삼는 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의 왼손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팔을 다 펼쳤을 때의 ‘날개 포즈’와 같은 동작이 이어졌다. 포르테에서 포르티시모로, 더 강렬한 음들이 펼쳐졌다. 지그, 지그, 지그! 죽음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요! 좀 더 감각적으로 느끼면서, 보잉에 좀 더 신경을 써서! 그는 소리쳤고, 유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시키바가 조형하는 음악이 어디에 있는지, 유토는 알 수 없었다. 실로폰과 비슷한 나무 건반이 교회의 종소리마냥 울렸다. 20cm 정도의 낮은 단상 위에서 그는 세계를 빚어내고 있었다. 아시키바 타쿠토는 무대 위의 왕이었다.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그의 순서는 세 번째였고, 죽음의 무도는 과제곡이었다. 그 말은 앞선 두 사람도 생상스의 이 작품을 지휘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앞의 두 사람보다 훨씬 명확하고 선명했다. 로드레이스의 1등과 지휘의 1등은 다른 감각일지도 모른다. 유토는 침을 삼켰다. 아시키바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죽음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한 밤을 이미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현악의 움직임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느낌이 아닐지도 모른다. ‘1등’이 기억에 남는 것처럼, 지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한 이미지를 남기는 게 일 등. 유토는 손깍지를 꼈다.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의 곡은 점점 더 고조되었다. 설렘과 떨림. 명확한 죽음에서 삐져나오는 유쾌함. 특유의 엉뚱한 기질은 오히려 음악에서 장점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메지네이션이 충분한 사람이 하는 묘사는 누구든지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 마련이었다. 유토는 자신에게 처음 콩쿠르의 티켓을 주던 아시키바를 떠올렸다. 나, 음악 전공해 유토. 라고 말하든 그 서툰 목소리에 쌓인 시간을 유토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자전거랑 같이 하면 어렵지 않습니까?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라, 좀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린다며 같이 가자고 말하는 그에게 좀 더 살갑게 굴어야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탈 때완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팀의 에이스로 주행할 때의 안정감과는 다른 또 다른 설렘이 그 곳에 있었다. 바이올린! 좀 더 기괴하게, Eb의 장점을 살려서! 그의 목소리는 또 다시 뻗어왔다. 느긋함과는 다른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모습. 유토는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음악에 끼어들 구석이란 없다. 같이 달리기만 하면 됐던 자전거와는 달리 그는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영원한 타자他者일 뿐이었다. 설명이 없었다면 이 음악이 그가 주로 말하던 베토벤의 9번과 어떻게 다른 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클래식을 하겠다고 말하던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 때 웃어넘기지 말고 좀 더 집요하게 물었어야할지도 모른다. 그는 아시키바가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만히 들었다. 죽음의 무도의 주제부가 끝나고 있었다. 다시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수탉이 울면 악마적인 존재들은 갑자기 춤을 멈추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은 그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아시키바는 그것을 대담하고도 낭만적으로 연출하고 있었다. 동이 트는 것 같은 정경이 찾아왔다. 이렇게 이 순간을 선명하게 느끼는 것은 아시키바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그만큼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유토는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음이 멎은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개중에는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아시키바는 뒤를 돌았다. 청중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유토는 손을 들었다. 그는 그제야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에서 유토를 보고 싶어. 그래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하면서 손을 잡아끌던 아시키바의 목소리가 번졌다. 유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시키바를 바라보았다. 그는 황급하게 손을 내밀어 콘서트마스터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사람아, 너무 늦어! 하고 타박하는 듯한 중년의 남자는 아시키바 옆에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움직일 때 마다 바이올린에서 광택이 났다. 박수 소리는 천천히 멎어갔다. 다음 곡은 거스테이브 홀스트의 『행성 교향곡』이었다. 저 지휘자는 독일 낭만주의 해석을 잘 하는 것 같아. 신인인데 대단하지. 이건 뽑은 곡인데, 홀스트는 독일 낭만주의를 계승하고, 그리그의 서정성과 라벨의 세밀한 리듬과 정교한 관현악을 계승한 작곡가라서 아시키바에게 잘 맞을 거야, 라고 속삭이는 뒷자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시키바는 다시 뒤를 돌았다. 그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핸들을 잡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타느라 콩쿠르에 나간 경험이 거의 없거든. 아마 이 시기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경력이 없을 거야. 라고 말하던 아키시바는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평상시처럼 상냥하지만 애매한 불안감을 떠안고 있었다. 잘 타던 자전거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분야로 진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유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했던 건 아닌가.” 유토는 중얼거렸다. 확신 없는 목소리였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신카이 유토가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이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는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홀스트의 풍부한 상상력과 관현악 기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뒷자리 사람과는 다른 인종이었다. 차라리 자전거의 프레임이나 바퀴, 체인이 얼마나 섬세한지에 대해서 이야길 하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유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자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린다는 ‘지휘 콩쿠르의 특등석’에 그가 자신을 앉힌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자전거 경주에서 그렇게 스마트한 사람이니까 이 또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토가 읽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컨디션이 좋을 때면, 골 앞 스퍼트를 위해서 댄싱을 할 때 교향곡을 떠올린다는 남자를 유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겹쳐져 있던 부분은 생각보다 더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유토는 손을 꼬옥 쥐었다. 같이 기숙사에서 나와 전철로 이동했다. ‘선생님’을 만나면 더 긴장할 것 같아서 유토를 데려왔어, 라는 말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적어도 그가 그의 ‘선생님’을 데려왔다면, 경기시작 전에 피나렐로의 신작이나 새 프레임에 대해서 떠들고 가진 않았을 것이다. 림스키 뭐시기코프나 홀스트나, 아니면 생상스의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서 뭐라도 더 듣고 갔었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온 몸이 거북했다. 마치 하야토 군의 중학교 팀에서 뛰는 기분이었다. 아시키바는 무대 아래에서 바라볼 때를 기준으로 왼쪽을 바라보았다. 유토는 그가 비올라를 바라보는 지, 바이올린을 바라보는 지 알 수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인사하는 목이 뻣뻣했다. 그가 추구하는 ‘멋진 실루엣’이 저런 모습은 아닐 것 같았다. 유토는 제 목을 옥죄는 넥타이를 조금 내렸다. 아시키바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선배! 하고 소리친다면 뒤를 돌아봐줄까, 유토는 제가 인식할 수 있는 곳 보다 더 멀리 간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카이 유토가 존경하는 선배는, 무대 위에서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가 웃어줘,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불가항력적인 말이었다.
*** 홀스트 다음에는 베토벤이었다. 몇 번을 연주했는지는 알 턱이 없었다. 그냥, 베토벤이 좋았다는 뒷자리 남자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1위없는 2위였다. 의미 없는 순위는 아니라고 했다. 아마 무명이기 때문에 덜컥 1위를 주기 아쉬웠을 거라는 선배의 냉철한 판단에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괜히 입만 산 것 같은 기분이라, 입을 꾹 다물었다. 자전거 경기 때 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의 주행에 대해서 반성회를 하고 싶었다. 유토는 손을 꼼질거렸다. 아시키바는 큰 가방을 매고 있지 않았다. 출발할 때와 같이 교복이었다. 자전거가 들어가는 가방과 달리 짐은 단촐했다. 연미복은 잘 개어져 슈트케이스 안에 넣었고, 얇고 가느다란 지휘봉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걸로 이력에 쓸 게 늘었다고 말하면서 아시키바는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출발할 때와 다르게 느긋하게 풀어져 있었다. 크림을 잔뜩 넣어 폭신폭신하게 부풀린 팬케이크 같았다. 늦은 밤이 전철 창문에 깔려 있었다. 그 어두움에 제 표정이 비쳤다. 그의 선배는 눈을 감고 있었다. 기차가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듯 했다. “오늘” “응?” “오늘, 연주는 어떤 느낌이었어요?” 선배에게. 유토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아시키바는 눈을 감은 채로 음, 하고 말을 늘렸다. 유토는 그의 나머지 한쪽 손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떨리지 않는 손가락에 제 손을 천천히 포갰다. 오히려 차가운 건 제 손마디였다. 아시키바는 그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전해져오는 느낌이 들었다. 생상스는 낮과 밤이 명확하니까… 밤은 틸 같은 느낌으로 했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켈의 유쾌한 장난」도 생각했지, 죽음의 무도의 죽음은 그렇게 무거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현을 좀 더 가볍게 살리고 싶었어. 콘서트마스터한테는 조금 혼났어. 그렇지만 혼난 만큼 잘 살린 연주였다고 생각해. 그리고 동시에 현을 Eb로 조율한 걸… 아시키바는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다가, 눈을 떴다. 그는 창문에 비친 유토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고,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잡히지 않는 골을 앞에 뒀을 때, 그는 그런 얼굴을 하곤 했다. 아시키바는 어쩌면 그의 형 보다 그를 더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다가. 손을 깍지 껴잡았다.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유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 하고 탄식했다. 아시키바는 손을 흔들었다. 재미있었어? 라고 묻는 목소리에 그의 후배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이런 면에서 솔직한 게 좋았다. 퉁명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굳은 표정. 아시키바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자전거를 타고 올 걸 그랬나? 라고 묻는 그에게 유토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이제 손 다치면 큰일 나잖아요, 라고 대답하는 꼴이 꽤나 맹랑했다. 나는 오늘 말이지, 아시키바는 입을 열었다. 유토는 창문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 바라보지 않고 한 매개체를 거쳐서 느껴지는 시선. 그 맹렬한 불평에 아시키바는 깍지 낀 손을 다른 손으로 덮었다. 유토의 손가락은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웠다. 유토는 고개를 도리도리, 하더니 잡지 않은 손으로 제 뒷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그리고 반대쪽 차량을 바라보면서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퉁명스러워보이는 표정이 맘에 밟혔다. 아시키바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틈에, 유토는 제 음을 끼워 넣었다. “나는, 선배가.” 멀리 가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씩 내비치는 솔직한 말이 귀여웠다. 아시키바는 눈을 굴리다가 그래서, 싫어? 하고 물었다. 창문에 비친 유토의 표정은 오늘따라 더 어려 보였다. 모르는 말들이 가득했고, 당연하게 모르는 곡들이 있었는데, 그걸 내가 몰랐고, 뒷자리 사람은 선배가 계속 대단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대단한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랬어요. 유토는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름의 고집인 듯 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남은 기분이었을까. 아시키바는 잔잔히 생각했다. 유토의 손가락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언제부터 했어요? 라고 묻는 말에 아시키바는, 진지하게 준비한 건 인터하이가 끝난 다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펀라이드 때 그렇게 쉽게 제져진 거예요? 유토는 얼굴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입술을 열지 않자 대답은 yes입니까? 라고 그는 재차 물었다. “유토를 데려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의 질문에 아시키바는 맥락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잡은 손을 찬찬히 흔들었다. 거기서 나를 아는 사람은 거기서 유토 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오케스트라에 집중해야 하는데 간간히 유토 쪽을 쳐다봤어. 그래서 감점이 됐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오보에처럼 다정했다. 유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어깨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그런 말 하면 누가 좋아할 줄 알아요? 유토는 맹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선배가 있다는 게 짜증났어요. 그의 솔직한 말을 아시키바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유토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저를 내려다보는 그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보기 싫다는 듯 가만히 그의 몸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덜커덩거리는 지하철 소리가 둘 사이의 행간에 자리했다. 제 팔을 지그시 누르는 무게를 느끼며 아시키바는 눈을 감았다. “가지 말아요.”
유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지하철 속력이 늦어졌다. 문이 열렸다. 하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울의 냉랭함이 둘 사이에 들어왔다가, 다시 문이 닫혔다. 출발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Camille Saint-Saёns, Danse macabre, Op. 40』, 이라는 말 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다시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시키바는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유토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이 no인건 알고 있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선배가 계속 자전거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메이소에는 안 간다고 해서 나는 선배랑 같이 하야토 군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어디 가는지 계속 캐물었는데 대답 안 해줬잖아요. 근데 이게 음대 가려고 했던 거라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유토는 한탄하듯 말했다. 그의 음정은 생상스의 기준음과 닮아 있었다. 끊임없이 지지배배 지저귀는 피콜로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아시키바는 무대 위에서 간간히, 눈을 마주치던 그를 떠올렸다. 『행성―주피터』를 시작하기 전 보았던 억지웃음을 떠올렸다. 웃어줘, 라고 속삭였을 때 보여주었던 미소에는 미련이 가득했다. 어쩌면 조금 이기적인 부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아시키바는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흔들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한탄이 돌아왔다. 인터하이에는 와요? 라고 묻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겨울이 발려 있었다. 먼 미래였다. 제대로 입학한다면 일학년 즈음이었다. 그 때는 아마 내 오케스트라가 없을 테니까 괜찮아, 라고 대답하자 유토는 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그럼 내후년은요? 라고 물었다. 너무 먼 이야기였다. 일학년을 다닌 다음 음악원에 유학을 갈 수도 있었고, 그 때에는 동호회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토는 여전히 그에게 기대어 있었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시키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해요.” 서툴고, 삐걱거리는 말이었다. 이걸로 속박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내뱉은 말일 것이다. 아시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라고 대답하자 한숨을 푹푹 뱉었다. 유토는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그가 멀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둘 사이의 애매함을 다시 밖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채웠다. 보고 싶을 거예요, 라고 말하자 아시키바는 계속 볼 수 있을 거라는 대답을 했다. 자전거를 타는 선배도? 라고 묻자 아시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산을 올라갈 거예요? 골 앞의 스프린트도? 유토는 계속 질문했다. 자전거를 타야만 할 수 있는 상황들이 그의 입에서 천천히 나왔다. 끊어지지 않는 선율은 바이올린 카덴차처럼 들렸다. 유토는 솔리스트 같아. 아시키바는 지금 할 수 없는 말을 입 안으로 꼭꼭 숨겼다. 지금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진로가 갈린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유토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 모양이었다. 아시키바는 그의 손을 놓았다. 유토는 기대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시키바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는 졸업해, 라고 말하니까 선배가 졸업한다고 해서 내가 선배한테서 졸업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라고 대답했다. 따박따박 말하는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도망치면 쫓아가는 게 내 특기인데, 왜 갈 수 없는 곳에 가는 거냐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지휘를 하는 선배가 멋있었어요. 어른들만 있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서, 멋있는 음악을 만들었죠. 유토는 빈 행간을 제 목소리로 채워갔다. 그래서 그만두라고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는 게 짜증나요. 그의 어린 후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시키바는 그의 숙인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다가, 그를 끌어안았다. 슈트케이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가까이 밀착한 거리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는 목소리에서는 어리광이 묻어 있었다. 그는 등을 토닥였다. 무대 밑을 바라볼 때 마다 멜랑콜리한 표정을 짓던 그의 후배를 반추했다. 너무 멀리 가지 말아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해, 라고 대답했다. 유토는 자전거 안타는 사람 싫어해요. 라는 대답을 했다가, 아니야, 하고 이내 대답을 고쳤다. 미안해요, 라는 말 뒤에 좋아해요, 라는 말을 성급히 붙이는 후배의 등을 다독이며, 아시키바는 지금 저희의 선율은 피아노의 왼손과 오른손 악보 사이의 거리처럼 놀라운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사소하고 소박하고, 또한 강렬한 주제부였다. “좋아해.”
-2018. 10. 21 작성 'Cosm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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