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도] 신앙의 기원

*안사귀는데 소이네하는 하야토랑 토도

*센티넬버스 au. 센티넬 하야토, 가이드 토도




   심장이 고동칠 때 마다, 맥이 뛸 때 마다. 숨을 들이킬 때 마다.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은, 예정된 죽음을 그림자마냥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과 같아서, 신카이 하야토는 단 하루도 밤이 무섭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이 몰려오는 감각은 깊은 물에 잠기는 것과 같았다. 몸의 통제를 잃어버린다. 의식이 잠든 동안 얼마만큼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변을 곱씹을 때 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숨을 내쉬었다. 밤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잠을 잘 때 마다 이변을 걱정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남을 상처입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작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제도 괜찮았다. 어제도 괜찮았다. 하지만 과거에 괜찮았다고 해서 미래까지 괜찮을 리는 없는 것이다. 내일은 겪기 전까지 희뿌연했다. 숨을 가다듬자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폭주를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였다. 익숙해질 법 한데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손발에 사슬을 엮고, 목술을 스스로 찬 묶인 오니처럼, 그는 가만히 침대 안에 들어 있었다. 심박수와 호흡, 뇌파상태가 체크되어 센터로 전송했다. 유능한 센티넬인 그는 국가의 최중요전력이었다. 그를 잃는 것은 곧,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타나는 괴이들과 상대할 수단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쉽게 죽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또 속이 답답했다. 경고음이 울렸다. 과속을 경고하는 네비게이션 같았다.

   차라리 엔진을 멈출 수 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향초를 피워보기도 하고 클레식을 들어보기도 했지만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 센티넬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정신병력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 적막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눈을 떴다. 상냥한 파란색 눈동자에 서린 것은 명백한 불안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 초, 숨을 참다가 다시 천천히 들이쉬었다. 호흡을 진정시키는 것은 신카이 하야토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동생과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형제가 한 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능력은 쉬이 진정되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혼자 자기 시작했다. 어둠이 무서웠다. 침대 틈바구니에서 나타날 괴이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벨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건 괜찮았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할 수도 있는 ‘폭주’ 그 자체가 싫었다. 어린 동생은 옆에 없었다. 능력 조절이 잘 된다는 상관의 말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이드를 찾았다. 잠에 들 수 없는 밤에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뭐야 하야토 군, 별 일도 없는 데 잠 깨우지 마, 라고 말하는 그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미안해, 라고 말하면 그 때는 불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지금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한 그의 동생을 떠올리며 하야토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를 타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간 중 이능력자의 비율은 10%고, 그 중 반수가 센티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밤이 무섭지 않을 것이다. 상담을 받아도 고쳐지질 않았다. 승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며 숨기는 게 좋을 거라는 의사 앞에서 무어라 말할지 몰라 머쓱하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애매하고 상냥하게 웃는 그에게 파트너를 구해 각인하라는 조언을 더하는 의사를 떠올리며 하야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쉽게 잠들 수 없을 듯 했다.

   눈을 감으면 폭주할 때의 정경이 선명하게 번졌다. 사관학교 때의 일이었다. 공중의 모든 것들이 칼날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그는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이 무기로 삼고자 하는 것들을 예리하게 벼려낼 수 있었다. 가장 높은 랭크의 능력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건물을 무너뜨렸다. 무너진 잔해에서는 틈이 생겨났다. 사람의 공포를 맛보고 싶어하는 괴이는 그 사이로 몸을 불렸다. 괴이 출현 경보가 울렸다. 사살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유능한 센티넬을 잃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번지는 화염과 겹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파와 모든 소란을 가르고 제게 다가온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하야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났다. 심장에 붙어있는 기계들을 땠다. 발목과 허리에 찼던 족쇄를 벗었다. 억지로 눌러두었던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을 더듬었다. 그의 손에 예리하고 유려한 형상의 검이 쥐어졌다. 그의 이능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검 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야토는 만들어 낸 검을 놓았다. 그것은 날붙이 하나 남지 않고 허공으로 돌아갔다.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 괜찮다고 해서 미래에도 괜찮다는 보장은 없었다.

   차라리 페어를 만들면 좋을 텐데. 그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소한 불편 때문에 누군가를 얽매고 싶진 않았다. 그는 옆방의 가이드를 떠올렸다. 그 애는 상냥해서 자신이 원한다면 평생이라도 같이 있어주겠다고 웃을지도 모른다. 하야토의 사소한 약점은 그 애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모두 떠안을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해줄 것이다. 하야토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애의 코드명을 떠올렸다. ‘신’ 이라는 이름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야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볕을 받으며 반짝이는 그 애와 함께 있으면 어떤 괴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그에게 신앙과도 같았다. 하야토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나약해… 라고 중얼거리면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웃통에 트레이닝복을 걸쳤다. 지퍼를 채우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 손으로 뺨을 톡, 톡, 두드렸다. 그는 개폐 스위치를 눌렀다.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옆방 문을 두드렸다. 똑똑, 하고 노크했다. 복도에 있는 디지털시계의 시간이 바뀌었다. 새벽 세 시, 삼십사 분.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 시간에 가장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냉기가 그의 몸을 찬찬히 적셔갔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제발, 열어줘, 라고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의 호의를 구차하게 붙잡고 싶진 않았다. 숨을 서툴게 들이켰다가 한숨처럼 내쉬었다. 다시 심박수가 올라가는지 차고 있던 시계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하야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라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잠에서 막 깬 것 같은 그 애가 보였다. 진파치, 라고 부르자 부드럽게 웃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그는 하야토의 손을 잡았다. 딱딱하게 굳은 찬 손을 만지작거리는 따듯한 손을 느끼며 하야토는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하야토를 제 침대로 이끌었다. 그게 능숙하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는 언제나 제 약함을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이었다.

   미안해, 하야토는 속삭였다. 토도는 고개를 저었다. 산신, 이라는 그의 이명을 하야토는 다시 한 번 반추했다. 인간의 믿음이 모여 신앙을 이루고, 그것이 곧 누군가를 신으로 만들 수 있다면… 토도 진파치를 신으로 만드는 건 신카이 하야토의 약함이었다. 토도는 하야토 쪽으로 제 베개를 밀어 넣었다. 하야토는 팔을 벌렸다. 토도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천장을 보다가 익숙한 듯, 하야토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하야토는 틈이 무서워? 라고 묻던 어린 날의 토도를 기억했다. 아직 산신이라는 칭호를 받기 이전의 일이었다. 그 때부터 ‘오니’였던 저와는 달랐다. 그 때도 그는 제 품 안에 들어있었다. 제 허리를 끌어안는 그의 팔은 말랐지만 강인했다. 제가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족쇄였다. 하야토는 무심코, 무서워, 라고 속삭였다. 잠이 묻은 토도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도. 그의 그 목소리는 안식처럼 울렸다.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는 괴물이 있다. 사람의 약한 곳을 가르고 나올 때도 있다. 하야토는 언제나 그것이, 오니인 자신을 가르고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산신의 팔이 그의 등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괴이에게 입은 상처를 토닥이는 손길은 따듯했다. 언제나 강할 수는 없어, 라는 목소리는 사관학교 시절을 닮아 있었다. 매일 밤 위안처럼 끌어당겼던 신앙이었다. 그를 품에 가두는 순간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괜찮아, 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그는 저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저를 위해 새벽을 비워두고 있었다. 그는 매일 그들의 첫 날을 떠올렸다. 미안한데, 잘 때 나를 끌어안아주지 않을래? 라고 권했을 때 그는 왜 저를 밀어내지 않았을까. 하야토는 제 신앙의 기원을 떠올리다가 눈을 감았다. 토도의 숨소리에 제 숨소리를 맞췄다. 가까이서 끌어안은 그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하야토는 그의 고동소리를 사랑했다. 제 귓가로 번지는 순간, 그는 언제나 안전했다. 신의 날개 아래 몸을 의탁한 어린 양처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떠 있을 것이었다. 하야토는 자신이 가장 약해질 때 마다, 그가 꼭 제 것 같았다. 비틀린 신앙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토도 진파치가 신카이 하야토의 신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다 뒤를 돌릴 때 토도 진파치는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왔다. 소리 없는 발걸음, 공중을 날아다니는 칼날에 찢어지는 여린 피부. 넝마가 된 제복을 입고서 부드럽게 웃어주던 그 모습 하나하나가 제게는 기적이고 구원이었다.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라고 속삭이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잠든 산신을 끌어 안았다. 숲 같은 향이 났다. 사랑해, 라고 속삭였다. 

   안식 같은 잠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