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우아시] 멸종위기종의 거리감에 대하여2018. 10. 31. 23:59
*** 멸종위기종의 거리감에 대해서 생각 해 본적이 있다. 쿠로다는 술잔을 기울였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불판에서는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아시키바는 핏기가 채 가시시 않은 고기를 뒤집었다가, 다시 뒤집기를 반복했다. 두 면이 죄다 설익은 고기에서는 기름이 뚝, 뚝, 떨어지다가 숯을 과하게 달구며 치이익,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그는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혹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은 것이던 간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 기묘한 루틴을 들으며 쿠로다는 빈 술잔에 얼른 맥주를 따랐다. 아시키바 타쿠토라는 인간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쿠로다는 제 앞의 집개를 가지고 익은 고기들을 그의 앞접시에 놔 주었다. 고마워, 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의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 아래로 내려간 듯 했고, 입꼬리는 축 쳐져 있었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 했지만 섵불리 들어줄 수 없었다. 그는 천연이었다. 180도를 더 돌아 남들과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이었다. 사고방식 자체가 멸종을 앞둔 종을 연상시켰다. 이 상태의 그를 괜히 들쑤시고 싶진 않았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쓸데 없는 이야기만 많이 듣게 될 것 같았다. 그런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쿠로다는 맥주잔에서 퐁퐁, 올라오는 기포를 바라보았다. 고기 굽는 척을 하면서 회피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음 싶었다. 그는 괜히. 많이 먹어, 라고 말하면서 아시키바의의 앞에 고기를 잔뜩 밀어놓았다. 불판의 중앙에서 찌개가 끓었다. 벌써 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쿠로다는 뚝배기에 물을 부었다. 수위가 올라가는 걸 보면서 아시키바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다음에는 한숨이었다. 고기집에 들어와서 그들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질 못했다. 잘 지내냐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주는 거니까 비싼 걸 먹겠다는 농담에는 그래, 라고만 대답했다. 진짜로 꽃등심을 부를까 하다가 후환이 두려워 삼겹살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시키바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고민이 있으면 팍팍, 털어놓는 게 좋아. 라고 술을 따르며 했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쿠로다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다. 기민하고 예민하다. 받아들이는 포인트가 다르다. 좀 더 상황을 감각적으로 이해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반응한다. 하지만 이지적이고 섬세하다. 이런 그가 언어를 세심하게 짜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고민하고 있단 뜻이었다. 쿠로다는 맥주를 마셨다. 아시키바는 설익은 고기를 가지고 놀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키워드부터 말하던가? 라고 툭, 던진 말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불판 위에서는 쿠로다가 그에게 던졌으나 버려진 말들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사실, 쿠로다는 이런 느낌의 술자리에 불려오는 게 익숙했다.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조언을 해주는 것도 자신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변은 그를 꽤나 좋은 상담역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대부분 민감하고 예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에는 조금 애매한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쿠로다는 자신이 들을 법한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을 떠올리려 했다.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애인은 있다고 들었지만 그는 한 번도 제게 연애상담을 한 적이 없었다. 아시키바 타쿠토의 여자 친구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지 그 실체가 모호했다. 요컨대 데이트를 목격당한 적도 없고, 그 스스로가 이야기를 절제하고 있었다. 들은 적이 없으니 상담을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터하이에서 그를 끌던 것 보다 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하코네의 고양이 배달부는 이번에는 골에 닿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정답으로 이끌 수 없음을 알면서 고기를 얻어먹는 건 기분이 애매했다. 아시키바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판 위의 모든 고기에는 그의 숨이 묻어 있을 게 분명했다. 한숨에 숯이 타오른다면 벌써 테이블이 불바다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며, 쿠로다는 고기에 기름장을 찍었다. 기름에 들어 있는 소금이 짭조름하니 맛있었다. 아시키바는 미안 유키,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미안할 건 없지. 쿠로다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 이즈미다가 있다면 지금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을까. 그는 입술을 뾰족 내밀고, 우물쭈물하다가 다시 설익은 고기를 계속 뒤집는 아키시바를 바라보았다. 에이스가 망설이고 있다면 그 등을 밀어주는 건 어시스트인 자신의 몫이었다. 골 앞의 그가 아니라, 평소의 그를 보고 있자면 묘하게 불안해져, 쿠로다는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수심이 깊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꼭 슬픈 랫서팬더 같았다. “일단 말이라도 해봐. 가장 속상한 것부터.” “잘 모르겠어.” “나한테 전화한 이유는 있을 거 아냐.” 전화 할 때 너, 좀 많이 급해 보였다고. 쿠로다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반추했다. 연습이 끝나고 샤워를 하고 오니까 부재중 전화가 서른 두 통, 라인 메시지가 열 통 정도 와 있었다. 모두 어조와 어투, 문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유키 오늘 만날래?’라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나러 갔더니,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그가 공원 벤치에 쪼그러 앉아 있었다. 그 큰 키를 작게 구기고, 핸드폰을 쥐고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이 비 맞은 랫서팬더 같았다. 애인 문제? 쿠로다는 멀리 있는 고기를 끌어다 아시키바의 앞에 놓았다. 아시키바는 이제 익기 시작한 고기조각을 놓고, 쿠로다가 끌어온 것을 집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깃집의 어두운 조명에 빛을 받은 부분만 반짝이는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애인 이야길 하도 안하니까 고민 없는 줄 알았어. 쿠로다는 그의 말을 대충 받으면서 초고추장이 들어간 파채를 젓가락으로 휘휘 비볐다. 그는 올해가 오년 째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그래서 걔가 뭐래? 헤어지쟤?”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바람 피웠어?” “아니 그것도 아니야.” 아시키바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깨를 축 쳐지게 하고 한숨을 다시 내쉬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고깃값만큼 들어줄게. 쿠로다는 고기 한 점을 제 앞접시로 가져오면서 말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자 유키-! 라고 말하면서 눈을 반짝거리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야기하기 어려우면 키워드부터 말해봐. 중간부터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게. 아니면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말하던가. 쿠로다는 그의 여자친구를 상상하며 말했다. 오년 정도 사귀었단 것 치고는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터하이 때문에 달리기에도 바빴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떻게 사귀었던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기숙사생활도 했었고, 그의 옆방에도 살았었는데 여자 친구의 흔적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꽤나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었다. 절대 기숙사에 들이지 않았거나, 아니면 요령 좋게 만나러 갔었겠지. 그 치고는 사랑에 맹목적인 구석이 있었다.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녀라는 거잖아.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쿠로다는 방긋방긋 웃었다. 아시키바는 애인이 두 살 연하라고 말했다.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쿠로다는 전혀? 라고 만문했지만 아시키바는 들어주지 않았다.- 자기보다 작고-너보다 큰 건 남자애 중에서도 거의 없을 거라고 반박했지만 아시키바는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귀여운 녀석이라고 말하면서 베시시 웃었다. 오늘 봤던 그 중에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쿠로다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너도 아는 녀석이야, 라고 말하면서 아시키바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는 녀석? 쿠로다는 그와 자신의 겹치는 여자 사람 친구 폴을 떠올렸다. 하코네 자전거부는 여자 매니저를 거의 들이지 않았다. 일학년 비주전만으로도 부가 굴러가는데다가, 낙오 된 녀석들에게도 역 할을 부여해야 ‘왕자’라는 자부심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여자 매니저도 거의 없었다. 그 이유 중 육 할은 토도 진파치였고, 이 할은 신카이 하야토 때문이었다. 잘생긴 선배들을 따라다는게 목적인 사람이 부에 여럿이라면 부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만다. 그래서 여자 매니저는 거의 없었다. 남자 부원이 빨래를 할 정도면 말 다 했지. 쿠로다는 가끔씩 방문하던 오비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 살 어린애가 매니저일 수는 없다. 일학년 때에도 신카이 하야토의 동생 때문에 여학생 입부를 제한했었다. 강호교란 원래 고달픈 법이었다. 쿠로다는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 자랑을 하는 걸 들으면서, 불현듯 공통적으로 아는 두 살 어린 여자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소름이 돋았다.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쿠로다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유토가 말야.” “푸우우웁” 기세좋게 불판에 뱉어버렸다. 비어있는 불판, 꺼져가는 숯불에 맥주가 닿아 불이 달아올랐다. 유,, 유키이-! 하고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로다가 인생에서, 알고 있는 유토는 단 한사람 뿐이었다. 그 유토? 라고 말하자 아시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한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후배의 성적 지향점을 알게 된 건 둘째치고, 두 사람이 사귀게 된 걸 단번에 말해버린 그 센스에, 쿠로다는 그가 곧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걔가 왜. 라고 말했다. 쿠로다는 꽃등심을 시켰다. 아시키바는 거기에 우설을 더했다. 곧 곡기가 나오자 쿠로다는 그걸 불판 위에 얹었다. 고기 굽는 소리라도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비싼 고기에 특수부위까지 더한 걸 보면 해야 할 말이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쿠로다는 침을 삼켰다. 아시키바는 가만히 불판 위의 고기를 바라보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뽑았어.” 하지만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쿠로다는 예? 라고 반문했다. 아시키바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긴 앞머리에서 그늘이 삐져나와 그의 얼굴을 가렸다. 쿠로다는 맥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의 잔에 반절 제 잔에 반절을 털어놓고 꼴딱꼴딱 마시고 있자니, 그는 그가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어버릴 줄 몰랐다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쿠로다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집개로 잘 익은 등심을 뒤집으면서 걔는 2년 전부터 어른이었어, 라고 대답했다. 아시키바는 맥주 잔에서 올라오는 기포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는 여전히 그가 자신보다 작았고-쿠로다는 걔가 열심히 커봤자 널 따라잡긴 힘들 거라고 말했으나 무시당했다.- 자신이 이야기 할 때 마다 방긋방긋 웃었으며 –쿠로다는 이 또한 사람이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아시키바는 들어주지 않았다.- 손을 잡는 것 조차 부끄러워 했다고 주장했다. 쿠로다는 익어가는 고기를 잘랐다. 조각조각 자른 고기를 불판의 여러 곳에 배치했다. 그가 알고 있는 신카이 유토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장님이 코끼리를 보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발을 만진 쪽과 코를 만진 쪽과 목을 만진 쪽의 감상이 모두 다른 건, 그들이 서로 다른 곳을 겪엇기 때문이었다. 쿠로다는 ‘산’에서 ‘아시키바 타쿠토’를 ‘따라가던’ 신카이 유토를 떠올렸다. 그의 주행은 원래부터 세련됐지만, 그를 따라갈 때는 한없이 맹목적이었다. 세상의 남아있는 목적이 그 밖에 없다는 듯 굴었다. 골을 노리는 그의 형이 귀신같다면, 아시키바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그는 맹수 같았다. 치타가 전속력을 내서 토끼 한 마리를 낚아 채는 것처럼, 그는 언제라도 그의 목을 물어버릴 것처럼 굴었다. 센스 있게 올라가고 맹렬하게 돌진한다. 아시키바의 뒤를 따라가는 레이스에서도 그랬고, 평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아시키바 사이의 거리는 유난히 좁았다. 틈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밟기는 어려웠다. 그 곳을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그래. 애매했다. 맹수가 사냥하고 있는 사냥감 앞에 끼어드는 어리석은 짓과 같은 일이었다. 쿠로다는 종종 자신과 이즈미다에게 쏟아지던, 출처 분명의 시선을 반추했다. 그 애가 어른인 걸 지금 알았다고? 쿠로다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천연인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그는 멸종하기 딱 좋은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애가 보내는 건 명백한 욕망이었다. 대단하고 이지적인 이 선배를 좀 더 쫓아가고 싶다. 따라가고 싶다. 그리고, 갖고 싶다. 그랬던 맹수가 이제야 맹수로 느껴진다고 하면 그건 초식동물의 문제였다. 쿠로다는 고기를 냠냠, 먹었다. 마침 맞은 편의 텔레비전에서는 부비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친화력이 좋아 멍청하게 배 위에 앉는 바람에 멸종 위기종이 됐다던 그 새는 아시키바를 닮았다. 아니, 적어도 랫서팬더나 팬더를 닮았을지도 몰랐다. 그는 섬세했다. 세상을 제 언어로, 제 시각으로, 제 음악으로 바라보는 데는 능숙했지만 위험을 감지하는 데는 서툴렀다. “차를 뽑아서 뭐. 그래서. 그거 가지고 어른은 아니잖아.” 아시키바는 쿠로다의 뒤쪽을 보다가, 볼을 긁적였다. 그의 뺨에 시선을 두다가, 쿠로다는 그의 앞접시에 고기를 올려주었다. 거리가 조금 좁아든 기분이 들어. 그리고 그러니까 보이는 거야. 레이스의 뒤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런 거. 좀 더 다부져진 어깨라던가, 남자다운 턱선이라던가. 신카이 선배랑 닮았는데도 묘하게 다른 느낌의 섹시, 같은 거. 차를 클러치 달린 수동으로 뽑았는데 그래서 기어를 넣을 때 팔뚝에 핏줄이 돋아. 가까이 오면 향수 냄새가 나. 짙은 건 아닌데 딱, 유토 같아. 그래서 그 느낌이 너무 어색하고 소름이 오소소, 돋는데 생각 해 보면 이상한 건 아닌 거지. 어른이니까 향수를 뿌릴 수 있는 거야. 근데, 언제부터 뿌렸을까? 하면 기억이 잘 안나. 벌써 예전부터 어른이었는데, 그걸 알아차린 건 지금인 게 조금 이상한데, 그렇다고해서 싫지는 않은데, 그게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 가끔 시선이랄까 그런게 너무 어른인데, 내가 아는 귀여운 애인이랑은 좀 더 다른 느낌이라... 아시키바는 중얼중얼, 이야기했다. 쿠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던 점원이 숯불을 갈아주었다. 다시 고기에서 지글지글 거리는 기름 소리가 났다. 쿠로다는 맥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의 팔뚝과 남자다워진 선을 이야기 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한 친구야, 개는 오년 전부터 맹목적이고 너 밖에 안 봤어. 라고 말해주기엔 어쩐지 간지러웠다. 말할 수 없는 밤은 술로 채우는 것이 쿠로다 나름의 답이었다. 고민은 어색하다, 뿐이야? 쿠로다는 질문했다. 아시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멋져져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현기증이 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은 아닌 듯 했다. 신카이 유토는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그를 홀라당 벗겨먹거나 잡아먹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 늪 같은 사랑을 할 수도 있겠지. 쿠로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두 살 연하의 후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서 진동하고 있는 아시키바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전화 왔어.” “아, 유토다.” “계속 온 것 같은데.” 타이밍 좋게 끊어진 전화에 디스플레이가 밝아졌다. 부재중 전화 열 다섯 통, 이라는 숫자에 괜히 아찔해졌다. 악어의 벌린 아가리에 머리를 넣고 있는 순진한 어린양의 꼴을 떠올리다가 쿠로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갖고 쟁취한다는 건, 그 애가 신카이 유토임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이 커가면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눈에 담아주지 않는 야속한 선배가 문제였을 것이다. 지금에서라도 알아준 게 다행일까. 쿠로다는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건너편에서는 아시키바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미 다 익은 고기를 먹으면서 쿠로다는, 그렇게 큰 고민은 아닐 거라고 말했다. 대기음을 듣고 있던 그가 시선만을 돌려서 정말? 하고 물었다. 그는 곧 익숙해질 거라고 말했다. 근섬유가 끊어지고 다시 붙는 거랑 비슷한 거야, 라고 말하자 아시키바는 끊어지는 건 싫은데, 라고 대답해왔다. 그의 해석에 당황한 쿠로다는 아니 헤어지라는 뜻은 아니고 점점 익숙해 질 거라고. 라며 다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이 근처인데 데리러 온대.” “그래?” “응. 삼 분 안에 도착한다던데.” “대단한 우연이네.” 콧노래를 부르며 아시키바는 짐을 정리했다. 쿠로다는 더 미련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숯불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지금 쿠로다랑 같이 있어. 아니. 내가 고기 사준다고. 아시키바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상냥하게 들렸다. 쿠로다는 찬물을 마셨다. 잔 안에 들어있는 얼음이 맑은 소리를 냈다. 너, 오늘 홀라당 잡아먹힐지도 몰라. 맹수의 사냥 타이밍을 이렇게 몰라서 어떡해 이 친구야. 쿠로다는 무언가 더 할 말을 떠올리다가 그저 뒷머리를 긁었다. 어차피,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였다. 그냥, 제 친구가 눈치가 없었을 뿐이었다. 고기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삼 분 만에 온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쿠로다는 투명 유리문 근처에 주차한 차와, 그 안에서 나오는 유토를 바라보았다. 요, 하고 손을 흔들자 고개를 숙여 인사해왔다. 그는 재빠르게 아시키바 옆에 앉았다. 유토-다- 라고 말하면서 몸을 기대오자 유토는 쿠로다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라고 말하자 그는 그제야 조금 편안한 표정을 하고 제게 불편하게 기대는 선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뭔가 더 할 말은 없었다. 쿠로다는 아시키바의 손을 꼭 잡은 유토를 바라보았다. 아시키바는 눈을 감고 있었다. 몇 잔 마셨어요? 라고 묻는 목소리는 맹랑했다. 쿠로다는 테이블 위의 술병들에 손짓하며 딱 반절씩 마셨다고 대답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많이 마셨네,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제게 기댄 그를 내려다보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어색했다. 쿠로다는 제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원샷했다. 어쩐지 속이 복잡했다. 있잖아, 얘는 한참 전부터 어른이었어. 너만 몰랐어. 이 멸종위기종아. 좀 위기감을 가져봐. 쿠로다는 할 수 없는 말들을 입 안에서 굴렸다. 차 뽑았다며. 라고 말하자 유토는 아, 예. 라고 대답했다. 데려다 드릴까요? 라는 말에 쿠로다는 고개를 저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것도 아니고 걸어서 집에 돌아갈만한 거리였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으며, 애초에 저 둘이 있을 차에 타고 싶지 않았다. 신카이 유토는 영리하다. 아시키바와 다른 의미로 세심했다. 아마 사귀는 걸 방금 알았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보여줄 만한 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다. 편견은 없지만 친한 친구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후배의 그런 모습까지는 보고싶지 않았다. 그는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눈치였다. 쿠로다는 제 단촐한 짐을 챙기면서 대충 목을 가다듬었다. 니가 너무 섹시해서 걱정이래, 라고 대충 둘러대듯 말하자 유토는 그런 것도 이야기 하는 사이냐며 키득거렸다. 그의 웃음은 어쩐지 서늘했다. 술에 취해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쿠로다는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계산은 아시키바가 하기로 했어, 라면서 그에게 빌지를 밀었다. 좀 더 있다 갈래? 라고 묻자 유토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시키바는 유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쿠로다는 유토의 눈과, 분위기를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태인데 아가인줄 알았다면 얼마나 노답인 거야,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이는 아시키바를 부축하는 폼이 익숙했다. 선배, 일어나. 라고 말하면서 반말을 섞었다. 그는 거리감을 잘 잴줄 알았다. 영리하다고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자, 그는 방긋방긋 웃었다. 데려다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에 쿠로다는 고개를 저었다. 셋은 가게에서 나왔다. 가을의 끝자락인지 밤이 찼다. 유토는 차 문을 열어 아시키바를 태웠다. 안전벨트를 매주고 쿠로댜에게 다가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라고 인사하는 꼴이 정중했다. 쿠로다는 괜히 심술이 생겨 “좋아해?” 라고 물었다. 유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 골을 땄을 때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로다는 그의 그 모습을 보다가 괜히 머슥해졌다. 잘 지내라. 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자 그는 다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운전석으로 갔다. 떠나버린 차의 뒷모습을 보다가 쿠로다는 오한이 들어 몸을 떨었다. 어린애는 금방 큰다. 인터하이의 3일 동안에도 커버리는 게 어린애다. 그는 아시키바가 그를 마냥 귀여워하지만 않았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골목길을 걸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은 검은 아스팔트에 진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그런 밤이었다. *** 아시키바는 유토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얼만큼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진지하게.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다 저를 바라보았다. 앞머리가 흐트러지는 걸 정리해주고, 귀를 넘어오는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뜨거워, 라고 말하면서 볼을 간질이다가도, 거리를 좁혀 볼에 키스를 하곤 했다. 평소 집에 도착하는 것 보다 더 멀리 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자전거 경기와는 다르게 속도를 내지 않은 완만한 드라이브였다. 아시키바는 손을 뻗었다. 자동차의 기어 쯔음에서 그의 오른손과 만났다. 유토는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넣어 들어올렸다. 그는 그의 손을 잡고 기어를 올렸다. 속력을 올렸다. 바다의 짠 내가 났다. 그냥 드라이브하고싶은데, 안돼? 라고 물어보는 말의 뒤는 어느 순간 짧았다. 기어를 잡은 손이 뜨거워서 아시키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유-토- 라고 말하면서 웃었더니 그는 글쎄? 라고 대답해왔다. 그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좀 더 컸고, 어른스러워졌다. 사랑스러운 유토, 라고 말하자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는 폼에만 어렸을 때가 묻어 있었다. 그는 다시 기어를 넣었다. 잡힌 손등이 뜨거웠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 때 쯤, 유토는 손을 놓고 아시키바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눈을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었다. 신호는 빨간 불이었고, 도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토는 몸을 기댔다. 불편하지? 라면서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목과 턱이 이어지는 곳에 입술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가 영원처럼 들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유토, 언제 이렇게 멋있어졌어? 아시키바는 얼굴을 가린 채 질문했다. 유토는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살랑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황홀한 것처럼 바라보다가, 그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글쎄? 라고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이건 또 평소의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며 아시키바는 부드럽게 웃었다. 눈을 감았다. 차 안에서는 유토의 향이 가득 묻어 있었고, 그래서 조금 졸리다고 생각했다. 아시키바는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나는 네가 너무 섹시해지고, 멋있어지고, 어른같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쿠로다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나는 조금 걱정이가 되어, 유토는 너무 멋있어서, 훌쩍 커버릴 것 같아. 잠의 끝에서 몽롱함을 담아 웅성이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랑스러웠다. 유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언제 이렇게 컸어? 하고 묻자 유토는 모르는 새, 라고 대답했다. 장난치지 마~ 라고 흘리듯 대답하던 아시키바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 상대론 언제나 전력이야.” 그래서 얼른 크고 있지. 내 맘 알겠어? 유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아시키바의 푸른 눈동자가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Cosm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