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매미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끝났다. 실감이 나질 않아 먼 경치를 바라보았다. 후지산의 끄트머리에 걸려 있는 구름은 한없이 하얬다. 너덜너덜해진 유니폼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있는 게 힘들었다.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격통이 몰려왔다. 파란 하늘의 색채는 평소보다 좀 더 바짝 반짝였다.
그래. 여름. 여름이었다. 매미 소리는 귀를 찢을 듯 다가온다. 유니폼의 검은색 부분에 닿은 햇볕은 유달리 칼날처럼 느껴졌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째 인정하기 싫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중력이 종아리 근육과 발목에 몰렸다가, 엉덩이에 고였다. 호젓하게 흘러가는 구름 너머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환호 이후의 시야가 고독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올해 나간 레이스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것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공허하게 비어가는 과정의 오감은 허망함과 허탈함과 닮았다.
찾아오지 말라는 지시라도 받았는지, 텐트에서 먼 끄트머리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골반뼈가 욱씬거렸다. 허리가 뻐근했다. 팀이란 건 귀찮을지도 모르겠어, 라고 쿨하게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짊어졌다. 내려놓은 후에야 그 무게감을 알았다.
승리 이후의 공허함은 자꾸만 시야를 과거로 돌린다. 하늘의 색은 여전히 아까와 같은 파랑인데, 사람은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마나미는 무릎을 당겨 앉았다. 게임기를 쥔 것도 아닌데 몸을 숙였다.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서운했다.
시계소리보다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산 정상. 페달을 밟은 후에 덜덜 떨리는 근육. 이 모든 게 어색하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어를 열 단 까지 올리지 말 걸 그랬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라는 반론을 내밀었다. 나름대로 견고한 자기합리화는 무너뜨리기 위한 테트리스 블럭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서 결국. 졌잖아. 라는 말을 속삭여주면 모든 가정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음에 고이는 건 후회뿐이었다. 숨을 들이켰다. 목 끝에 걸리는 것은 울음으로 나왔다. 풍경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다. 마나미 산가쿠. 17세 소년의 여름. 인터하이의 마지막은 그런 식의 엔딩이었다.
씁쓸하고 찝찝했다. 땀에 젖은 다리가 뒤늦게야 아팠다.
시상식 단상에 올라갔다. 선배의 정수리가 보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머리띠로 단정하게 올리고 있었다. 잔머리가 삐져나왔다. 선배와는 같은 볼륨이지만 다른 색깔의 꽃다발을 받았다.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괜히 입술을 당겼다. 오노다 사카미치를 사이에 두고 양 옆. 서툴게 끝나버린 여름과는 대조적으로 토도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땀을 먹은 머리띠가 아닌 물색 머리띠. 단정하게 마른 유니폼. 새 유니폼은 너덜너덜해진 상처도 땀 냄새도, 여름도 묻어 있지 않은 선명한 하양이었다. 마나미가 입고 있는 구겨진 것과는 달랐다. 개인 시상대는 팀 시상과 달리 허무하게 끝났다. 목걸이를 걸었던가, 걸지 않았던가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간단했다.
기억에 남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계단을 내려간 건 토도였다. 그는 넘어지려는 오노다를 부축했다. 몇 가지 잡담을 발랄하게 나누면서 그를 팀에 돌려주는 것까지 빈틈이 없었다. 마나미,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간결했다. 깔끔했다. 평소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래서 순간 ‘이것까지도, 시뮬레이션 했나요?’ 라고 질문할 뻔했다.
입술을 꾹 눌렀다. 오열만이 가득 차 있던 텐트는 정리된지 오래였다. 빈 자리를 천천히 밟아갔다. 토도가 안고 있던 꽃다발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전거에서 내린 다음에 할 잡담이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건넬 말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차를 멀리 바쳤다는 고문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면서 허탈하게, 터벅터벅 걸었다. 땅을 박차는 클릿 소리가 이상했다.
버스의 끄트머리가 보일 때 쯤 토도가 입을 열었다.
“마나미.”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자연스러웠다. 그는 모든 게 익숙했다. 미리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하고 대답하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시간 또한 멈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별로 슬프지 않아 보여요, 라고 말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말하지 못하고 삼켜낸 말이 너무 많아 체할 것 같았다.
왜 웃지 않았어? 토도의 질문은 의외였다.
졌기 때문입니다. 라고 심플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가볍게 나온 말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입술에 손을 댔다. 모든 게 정리 된 경기장은 어수선했다. 여름 특유의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심장이 술렁였다. 노을을 등진 토도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주황을 먹은 물빛 머리띠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아라키타가 손을 흔들었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손길에 걸음을 땠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마나미는 제 잡힌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선배, 라고 말하자 토도는 부드럽게 웃었다. 자유롭게 달렸어? 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달콤했다. 머뭇거리면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할 말이 없었다. 생각했던 모든 변명은 이미 지워 낸 뒤였다. 무언가 대답하려면 말을 억지로 게워내야 했다.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토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토도의 어깨 너머로 아라키타를 바라보자, 그는 얼른 오라는 듯 손짓했다. 다시 발을 때려고 하자 토도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그를 멈춰 세웠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깊게 가라앉은 파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닿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순간 다리가 풀릴 뻔 했다. 자유롭게 달렸다면 됐어, 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두드리다가, 토도는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마나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몸을 돌려 아라키타에게 달려갔다. 흔들리는 기색 없이 깔끔하게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다가, 눈을 비볐다. 속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