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토도] 여백.

   미리 보낸 박스로 두 개. 그렇게 힘주어 밀지 않아도 되는 캐리어로 하나였다. 단출하고 덤덤한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현관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아라키타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폭신하게 가라앉는 촉감은 취향이 아니었다. 가깝지 않은 부엌에서는 애호박 써는 소리가 번졌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오가는 소리는 꼭 그 애를 닮아 있었다. 지나치게 균형적이라 안정적이게 들리던 소리를 애써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라키타는 제 손마디를 쥐었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고시엔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의 인터뷰가 지나갔다. 늦은 저녁에는 지루한 드라마나 경기 복기를 해주는 예능 따위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채널이 없는 것은 그 애의 영향이었다. 말이 끊이질 않으니 텔레비전을 틀 이유가 없었다. 손으로 휘젓는 것처럼 채널을 옮기다가 이내 그것도 그만 두었다. 이번 마운드는 예년보다 조금 더 높을지도 모른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늦은 여름처럼 길게 늘어졌다.

   괜히 앉아서 팔꿈치를 만지작거렸다. 옅어진 수술자국의 흔적을 찾아 더듬다가, 흉터가 있음에 안심했다. 찌르르 오는 통증도, 쑤시거나 하는 반향도 오질 않았다. 야속하게도 한동안 맑을 모양이었다. 벙커침대 아래에 꼭 맞게 넣은 소파의 처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자 매미가 울었다. 벌써 그런 계절이었다. 부엌에서 건너오는 소리는 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생활소음 뿐이었다.

   흘려보낸 날들을 허망하게 헤아리다가, 소파에 등을 대고 누웠다. 무언가를 가지러 온 그 애는 힐끔 고개를 돌려 응시하더니, 잔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멀어졌다. 그의 동작에는 여전히 소리가 없어, 아라키타는 그의 빈자리를 쉬이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널을 돌렸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경기였다. 신인이라는 포수는 아는 이름이었다.

   그의 마운드에 공을 던져넣던 시절도 있었다. 이미 잊은 감각이었다. 손 안에 차오르는 경식 야구공이나, 여름에 쓰고 나면 꿉꿉한 냄새가 나던 글러브도 이미 잊은 어제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곧 모든 감각에 대해 메말라간다는 것이어서, 청춘이라 회상하는 기억보다 더 이전의 것들은 이미 빛바래 바스라진지 오래였다.

   스트레이트를 꽂을 때 마다 미트소리가 났다. 그 애는 미트 손질을 잊지 않는 애였다.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그것에 로진이 묻은 공을 던져 넣을 때 마다 나이스-! 하고 번져오던 목소리 또한 기억한다. 표정을 거의 가리는 포수 마스크 아래에 있는 표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아웃, 하고 소리를 지를 때 마다 목소리가 갈라졌던 것도 같은데. 아라키타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맥주 하나만. 아라키타는 그리 멀지 않은 부엌에 말했다.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구나. 라고 묻는 목소리에 뭐, 하고 대꾸했다. 평소와 같은 공방攻防이었다. 맥주의 브랜드도 보지 않고 캔을 열었다. 캔을 잡은 손아귀가 얼얼했다. 얼렸었어? 라고 묻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까운 외야로 나가있던 유격수가 홈으로 송구했다. 어깨가 좋은지 공이 빠르게 뻗었다.

   공을 바로 받은 포수가 홈 스틸을 저지했다. 그리고 아라키타는 문득, 저녁 먹기 전에 먹지 말라는 말도 안 하는 구나, 라고 깨달았다. 늦게 눈치 채게 되는 것들에는 모두 그림자가 있다. 서늘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어서 뒷목을 쓸었다.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손끝이 제 목덜미에 닿았다. 흐르지도 않은 땀을 괜히 닦는 척했다. 그애가 보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하는 변명 같은 일이었다.

   미리 보낸 박스로 두 개. 그리고 다 차지 않은 캐리어로 하나였다. 생각보다 단순한 짐이었다. 떠나는 사람의 것은 언제나 단순하다. 버리고 가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야구를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부실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짐이 없었다. 미리 사놨던 배트, 길을 들였던 글러브. 유니폼과 수건 따위를 아득바득 챙겨도 박스 하나가 되질 않았다.

   그마저 들지 못해 수레를 끌었다. 짐 챙기는 걸 도와준 배터리는 잡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멍청한 일이었다. 하코네 학원 자전거 경기부의 락커룸도 마찬가지였다. 삼년 모자라게 쓴 부실이지만 짐이 없었다. 유니폼 아래에 입는 티셔츠 몇 장, 갈아입을 옷 몇 개. 도서관에 반납하지 않은 책쪼가리, 수건. 그것들을 모두 챙겨봤자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우지 못 했다.

   그 해 졸업하는 삼학년 레귤러 중에 짐을 미리 빼지 않은 건 아라키타 뿐이었다. 삼일을 오가면 다 가져갔을 수 있겠다고 놀렸던 것이 신카이인지 아닌지, 아라키타는 생각해낼 수 없었다. 버릴 건 버리고 줄 건 다 주니까 생각보다 짐이 없었다던 말도 마찬가지였다. 발화자를 모르는 말들은 먼지처럼 그의 주위를 부유했다. 성급하게 맥주를 마시다 기침이 났다. 여전하구나. 라는 목소리가 부엌에서부터 번졌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련이 없어지니까 챙길 것도 없다고 말했던 건 누구였을까. 그는 신카이와, 후쿠토미의 목소리로 그 말을 재생했다. 어딘가 목소리에 달라붙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국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아라키타는 턱을 괴었다. 괜히 무릎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는 부엌에 있는 그 애의 목소리에 그 말을 더했다. 익숙하게 붙는 그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듯 헤집다가, 다 마신 캔을 구겨 테이블 위에 얼려두었다.

   아라키타는 그가 미리 부쳤다던 두 상자의 짐과, 비어있는 것처럼 덜그럭거리던 캐리어를 떠올렸다. 그것이 그 기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엌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들리고 있고, 텔레비전에서 뻗는 앵커의 목소리는 그애의 존재감을 가리지 못했다. 무언가를 물에 씻는 소리가 들렸다. 채반을 통과한 물방울들이 가볍게 번졌다.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가 그렇게 결정한 이상,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고집스럽고 불퉁하다. 그가 먼저 보낸 짐에 자신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나중에 가져가기로 한 캐리어엔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캐리어에 남아있는 공간은 너무 작고, 협소했다. 아라키타는 신경질을 내며 텔레비전을 껐다. 단절과 단선,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늘어져버린 테이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마운드. 그는 자신이 놓아버린 것들을 떠올리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꼴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구나.”

 

  갓 지은 햇밥 냄새가 났다. 아라키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위에 걸터앉기라도 했는지, 정면에서 시선이 번져왔다. 그러니까 더욱 더 ‘끝’ 같았다. 토도, 하고 이름을 불렀다. 응,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는 어제와 같았고, 그제와도 차이 없었다. 가지 마, 라고 해도 갈 거잖아, 라고 말했다. 결론을 내린 그를 뒤집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화내왔지만 변하지 않은 습관이었다.

   브로콜리의 단단한 심지 같이 삶아도 물러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한숨을 푹푹 토해냈다. 나도 데려가, 라고 농담처럼 건네려다가 그만 두었다. 말 대신 토해내는 숨들은 그를 낚아채는 무언가가 될 수 없음을 아라키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표정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그의 깊은 청안을 바라보았다. 파란색 눈동자 안에 자신이 고여 있는 모습이 꼴사나왔다.

   그가 챙기는 빈자리에 언제까지고 자신이 있을 줄 알았다. 난생 처음 배터리를 짰을 때 그 포수와 언제나 같이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풋내 나는 망상이었다. 내내 담담하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 라고 타이르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어, 라는 대답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라키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토도는 테이블 위에 걸터앉은 채로 가만 그를 바라보더니 달래듯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떠나는 그가 챙기지 않은 흔적들이 많았다. 단단히 달라붙어 냄비 밑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탄내처럼, 그가 굳이 들고 가지 않은 것들이 공간에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당장 헤어지면 내가 더 슬퍼할 거야.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감정의 깊이를 재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은 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았다. 토도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네가 약해질 때 마다 내 것 같았을 때가 있었어.”

   “지금은 아니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취향이던 길이에서 더욱 짧아진 머리카락을 바라본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머리띠에 고운 이마선이 보였다. 난 너만 있으면 돼, 라는 말에 토도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없었어? 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맞지 않았던 거야. 단순한 일이야. 라고 말하는 그의 입술이 야속했다. 눈과 눈을 마주쳤다. 노려보듯 미간을 좁혔다. 토도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말간 쌀뜨물같이 희었다.

   여전히 부엌에서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도의 등 뒤. 텔레비전에서는 이번 시즌은 벤치클리어링이 적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괜히 팔을 움직였다. 수술한 흔적을 찾아 더듬었다. 아프지 않은 걸 보니 한동안 비는 오지 않을 듯 했고, 비를 핑계로 그를 잡을 수도 없었다. 일상적이기 그지 없었다. 그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정말? 하고 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다가왔다. 한 걸음 걸음을 밟는 순간이 짧다는 것을, 느리게 인식한다. 제 앞으로 소리 없이 다가온 그가 몸을 숙였다. 짧은 머리카락이 제게로 흘러올 때 아라키타는 그의 샴푸 향이 민트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감아, 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았다. 벙커침대 아래의 소파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숨을 부볐다. 호흡이 짧았다. 입술을 겹쳤다. 영원 같았다. 이 또한 그의 가벼운 캐리어 안에 들어갈 수 없이 남겨지는 시간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김빠진 맥주 기포처럼 아득했다. 곧 꾸겨진 캔 같은 헤어짐이 반향처럼 밀려올 것이었다. 

   모두, 그가 챙기지 않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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