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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칸] 그는 장미를 선물하기 위해 살고있다.2019. 6. 2. 02:02
01. 5월, 중순. 여름의 초입.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지런히 열을 맞추어 진열된 로드바이크가 보인다. 프레임의 성질에 따라 분류한 것들은 다시 브랜드와 크기로 나눈다. 개중 눈에 띄는 것들-예를 들어 신상품이라던가, 이번 시즌에 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은 공중에 고정시켜두었으며, 바퀴와 림 따위의 부품들은 작업을 위해 따로 빼둔 곳에 놓는다. 그것들은 대부분 엷은 기름 냄새와 타이어 냄새의 교차점이 가늘게 나는 그곳에 다소 난잡하게 놓인 공구상자들 사이에 위치한다. 칸자키 사이클숍의 구석에는 한 사람과 자전거 한 대 정도는 넉넉하게 들어가는 작업공간이 있다. 그곳은 성인 남자가 엉덩이를 디밀고 앉아 가만히 집중할 정도의 크기였다. 팔을 휘저어도 걸리적거리는 건 없지만, 손에 닿지 않는 공구는 없다. 작업자의 취향이 진득하게 녹아 있었다. 칸자키 미키는 자신의 오빠가 휜 휠을 보고 있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핸드폰을 쥐었다. 이 시간대의 숍은 언제나 한적했다. 칸자키 미키는 계산대에서 턱을 괴었다. 5월 중순. 여름의 초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쨍한 햇볕이 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빠가 부르는 콧노래를 들었다.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흥얼거리는 허밍 또한 끊이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라고 말을 걸자 그는 멋쩍은 듯 하하, 하고 웃었다. 부자연스러운 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손깍지를 낀 다음 하늘로 천천히 올렸다. 굳어있던 어깨 근육이 당겨졌다. 손끝이 떨릴 때까지 팔을 밀다가 한숨과 함께 풀어놓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한쪽 어깨를 돌리다가 손목을 탈탈 털었다. 그는 제 오빠가 자리를 응시하다가, 좌측으로 고개를 틀었다. 소탈한 가게와는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를 화사한 꽃송이들에 눈이 부셨다. 잎사귀는 진한 초록이었고, 꽃송이는 모두 강렬한 빨강이었다. 유리 화병에서 길게 늘어지는 투명한 그림자 끝에는 묵직한 꽃그림자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이 칸자키 사이클숍과 어울리지 않다, 고 잘라서 말할 수 없는 것은 꽃을 묶은 방법이 제법 세련되었고, 유리 화병이 리들리나 LOOK 따위의 흰 프레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초봄꽃이나 하노이가 꽂혀 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꽃의 밸런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미키는 큰 꽃송이와 작은 송이들이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받아올 때』 마다 제대로 말은 안 하지만 제법 비싼 꽃인 게 틀림없었다. 원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들은 비싼 것일수록 화려하고 고운 법이었다. 그녀는 화병의 기억을 곱씹었다. 저번 달에는 철이 이르다는 작약을, 그 전달에는 프리지아를 한아름 들고 왔었다. 작년 겨울에는 안개꽃일 적도 있었고, 미니장미이기도 했다. 마른 질감의 스타치는 겨울보다 살짝 이른 늦가을에, 작년 여름의 끝물에는 해바라기를 메인으로 한 이름 모를 꽃들을 엮어오기도 했다. 그것들은 고등학교 삼학년인 오빠가 받기에는 묘하게 과한 느낌이었고, 갓 스물이 된 오빠가 받기에는 애매한 느낌이었다. 벌써 일 년 정도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오빠는 꽃을 받아온다. 출처불분명이고 누가 줬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엔 핑크빛 로맨스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오빠 근처에는 이런 꽃다발을 엮을 만큼 세련된 사람이 없었고, 또 연애를 시작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칸자키는 동생에게까지 무언가를 숨길만큼 너구리같진 않았다. 누군지 몰라도 참 꾸준하다 시피 보내는 그것들은 언제나 칸자키의 품에 ‘한아름’ 안길 정도로 크고 굵직했다. 그래서 여자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섬세한데, 묘하게 투박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주변에는 그런 여자는 없었다. 미키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핸드폰 줄이 핸드폰에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다 턱을 괴었다. 해결되지 않는 추리는 재미가 없다. 추리 소설이 재미있는 건 그게 ‘해결’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 하고 고민하듯 소리를 내자 토지는 왜? 하고 물었다. 그녀는 눈을 가만히 감았다 떴다. 상투적인 질문을 하는 건 너무 뻔했다. 재미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달리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쌜쭉이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붉은 장미를 바라보았다. 노골적일 정도로 선명한 빨강이었다. 꽃봉오리 사이가 무르지 않고 단단하게 닫혀 있는 것을 보다가,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은 여전히 ‘그냥. 누가 줬어’ 정도로 돌아올 것을 예상하면서.
― 이번에는 누구야?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조금 멋쩍게 웃다가 화병을 바라보고, 볼을 긁었다. 기름기 있는 거라도 만지고 있었는지 피부에 검댕이 묻었다. 그는 그 자리에 계속, 계속 검은색을 묻히다가 코를 킁킁, 들이켰다. 음, 하고 그는 망설이는 소리를 냈다. 미키는 그 대답을 듣고 ‘그 사람’인가 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의 오빠를 그렇게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지간히 애매한 모양이었다. 계속 같은 대답이 반복되는데도 범인의 꼬리를 잡지 못하는 건, 그의 오빠가 이렇다할 단서를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풋내기 탐정인 그녀는 그가 왜 입을 열기 전에 망설이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추리 소설에서 ‘탐정은 고민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퉁쳐지는 일을 몇 달째 실패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놓칠 게 뻔한 꼬리잡기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칸자키 토지는 넉살좋게 웃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묘한 수줍음이 어색했다. 미키는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카운터 의자에 허리를 대고 누웠다.
―그냥, 누가 줬어.
또, 『그냥 누구』 씨였다. 그녀는 화병을 바라보다가 그럴 것 같았어. 라고 대답했다.
02. 『그냥 누구』씨
칸자키 토지가 숨이 죽어있는 수국을 가져온 날이 있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라도 맞은 모양이었다. 작년 6월의 일이었다. 한 품에는 풀죽은 수국, 한 품에는 자전거 륜행 백을 가지고 있었다. 등에 맨 가방은 입이 빼꼼 열렸는데, 빗물이 가득 차 찰랑이고 있는 유리 화병이 들어있었다. 얼른 수건을 가지고 가자 그는 백팩에서 화병을 꺼내달라고 했다. 그녀가 낑낑거리며 리들리와 룩, 타임 사이에 놓은 트롤리에 화병을 내려놓자, 그는 잔뜩 쳐진 수국을 대충 꽂았다. 고등학교 3학년 남자의 한 품에 들어갈 정도의 한아름이 모두 숨이 죽은 채로, 방금 전까지 빗물이 담겨 있던 화병 안에 들어있는 모습은 꽤나 안쓰러웠다. 머리카락을 터는 그에게 수건을 건네자, 그는 설탕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설탕을 대충대충, 수국 담은 물에 풀었다. 이렇게 하면 오래 간대, 라는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면서 줄기를 젓가락으로 푹푹 찌르던 –설탕을 용해시키려는 행동이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정도의 행위로 보였다.- 건 상당히 어색한 모양이었다. 웬 꽃? 이라고 묻자 그는 누가 줬어. 라고 대답했다. 썩 심플한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국은 며칠을 더 살았다. 유리 화병은 트롤리에서 평평한 나무 진열대 위로 올라갔다. 화병은 비어있을 때 보다 차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것은 칸자키 토지가 한 달에 한 번씩 꽃을 받아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품에 한아름 가득 들고 오는 것들을 볼 때 마다 ‘꽃은 한없는 사치품이다’ 라고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이가 모일수록 풍성하다. 햇볕을 받으면 반짝인다. 유리병 속의 투명한 물들은 시시각각 빛을 산란시키고, 뿌리가 잘렸으나 생화의 향은 여전히 강렬해 코끝을 찌른다. 시들기 전에도 추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름답다. 시든 다음에 음식물쓰레기로 배출되는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오빠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작업 중간중간에 손을 멈추고선 화병 쪽을 바라보고 있곤 했다. 오빠에게 꽃을 주는 사람도 이런 걸 알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그냥 누가』씨가 『그냥 누구』로 머물러 있는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오빠는 의외로 맺고 끊음이 확실한 남자였다. 성격 좋은 남자지만 납득할 수 없는 건 납득하지 않는다. 나름의 강단이 있는 사람이 ‘그냥 누구’라고 지칭하는 건 분명 그것이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후배일까, 혹은 선배일까, 그것도 아니면 길에서 만난 누군가일까. 아니면 꽃집의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는 걸까. 여러가지 추측을 내놓았지만 결론을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칸자키 토지에게 누가 주었느냐 물을 때 마다 그가 그 정도의 대답만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칸자키 미키만이 알고 있는 소소한 재미였으나, 그것이 장기전이 되면서 그녀는 슬슬 『그냥 누구』가 대놓고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오빠가 그것을 받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오빠도 그걸 굳이 칸자키 사이클숍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저, 그냥. 그런 일이었다.
『그냥 누구』씨의 활약은 오빠가 스물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식 때 그는 한품에 담을 수도 없는 한아름을 가져왔다. 화병에 빽빽하게 들이찬 그것들의 꽃말은 죄다 ‘미련’과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받아왔던 보라색 수국도 ‘진심’이라는 말이 붙어있다고 했다. 『그냥 누구』씨, 오빠를 짝사랑 중인 거 아냐? 라고 장난스럽게 물어본 말에 그녀의 오빠는 손을 내두르고 약간 볼을 붉히면서 ‘그럴 리 없는 사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 달도, 그 다다음 달도, 그 다다다음달도. 『그냥 누구』씨는 꽃을 건넸다. 한 달은 꽃배달로 온 적도 있었는데, 꽃집의 배달원도 『그냥 누구』씨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 꽃집엔 처음 오신 분이었어요, 선물을 한다고 했죠.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날 배달 온 꽃은 아네모네였다. 오빠가 말을 아는 지, 모르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누구』씨는 짝사랑을 하는 모양이었다. 별로, 좋은 상대를 고른 건 아닌 것 같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멀리서 자전거를 스탠드에 걸어두던 그가 응? 하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그냥” 하고 대답했다. 뭐야, 시시하게. 라고 말하는 그녀의 오빠는 가게 구석에 펼쳐놓은 작업장으로 왔다. 그는 그곳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았다. 그는 체인이 끊어진 자전거를 수리하면서 다시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을 응시하며 손을 멈췄다. 몇 번이고, 망설임처럼 반복되는 동작이었다.
03. 범인은 언제나 범행현장에 다시 돌아온다.
『그냥 누구』씨는 이번 5월엔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줬다. 잎사귀와 줄기는 선명한 초록이었고, 꽃잎은 선명한 빨강이었다. 칸자키 사이클숍의 분위기와 조금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한 꽃이었다.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준 걸까, 생각했지만 묘하게 성년의 날과 시기가 맞지 않았다. 오히려 로즈데이와 가까운 날이지만 이것도 당일을 맞추지 않았다. 성격이 조금 삐딱한 사람일까, 생각하면서 눈을 깜빡였다. 이번 달에도 ‘그 사람은’ 『그냥 누구』씨였다. 범인은 언제나 범행현장에 찾아온다. 어떤 추리소설에는 이를 자신이 벌인 일의 결과를 마음이 진정된 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설명했다. 꽤나 그럴싸한 말이었다. 대충대충 읽었던 추리소설 몇 건에서도 성립되는 말이었지만 『그냥 누구』씨에게는 그럴 마음이 영 없는 모양이었다. 보낸 다음의 결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오질 않았다. 꽃병에 관심을 두는 건 아저씨 라이더들이나, 자전거 수리를 맡기러 온 어머님들 뿐이었다. 칸자키 토지에게 꽃을 줄만한 사이의 사람은 대부분 ‘오글거리게 무슨 꽃이냐’ 파였고, 소호쿠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찾아와서는 자전거 프레임과 클라임 요령 이야기나, 부활동의 부원들을 어떻게 독려해야 하는지, 대회에 나갈 때 파견을 나와 줄 수 있는지, 혹은 드디어 스프린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던가 따위의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화병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건 최초의 한 번 뿐이었고, 그나마도
―저게 뭡니까? ―엉. 인테리어.
라는 대화로 끝을 냈다. 적어도 소호쿠 고등학교 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저 정도의 감상을 보내는 건 꽃을 보낸 사람의 감수성이 아니었다. 미키는 하품을 했다. 5월 중순. 여름의 초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쨍한 햇볕이 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빠가 부르는 콧노래를 들었다. 그는 가만히 손을 멈추었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오후 세 시’처럼 머물렀다. 느릿하고, 천천히, 가는줄도 모르는 것처럼.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그 꽃은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배합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의 꽃들보다 확연하게 반짝거렸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벌써 작업을 잊어버린 채 십 분 동안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오빠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그걸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선 다시 손을 뻗었다. 검댕이 묻은 얼굴이 오묘한 표정으로 물들다가, 한숨을 쉬곤 카운터에서 돌아 앉았다. 끊어진 체인을 갈아 끼우고, 자전거의 모든 구석구석을 점검한 후에도 그는 작업공간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프리츠 하나를 담배를 물듯이 물고, 오랫동안 끄트머리를 까딱였다. 그러다가 문득 전화기를 들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었다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자 그는 기름 묻은 손으로 머릴 벅벅 긁더니, 아니,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그는 괜히 공구상자를 바닥에 쏟았고, 핸드폰을 높은 곳으로 올렸다. 그의 공구상자는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했다. 굳이 정리할 시간이 아니었다. 미키는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의 초조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스패너를 드라이버 쪽에 넣었다가 아니, 아니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공구상자를 뒤집었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혀 흐트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빠? 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엉, 하고 대답했다. 귀 끝이 빨개져 있었다. 묘하게 이상했다.
“어디 아파?” “아니. 아무것도 아닌데.” “거짓말.”
그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머물다가, 다리를 쭉 펴 앉았다. 공구통이 거의 정리될 즈음, 그는 고개를 돌려 화병을 보았다. 미키 또한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쳐다보았다. 화려하고 큼지막한 꽃송이들은 선명한 빨강이었고 그것을 보좌하듯 녹색 이파리가 절묘하게 화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듯 예쁘게 묶인 꽃다발을 보다가 다시 칸자키는 스패너를 애꿎은 바닥에 던지듯 떨어뜨렸다. 미키는 턱을 괴었다. 그 순간, 똑똑- 하고 창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하고 그녀가 고개를 드는 순간, 그녀의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밖에는 긴 머리카락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초록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인상적인 색과는 다르게, 묘하게 시선이 바닥을 쓸고 있었다. 몇 번쯤 본 사람이었다. 자전거 수리 맡기려나? 하고 묻자 칸자키 토지는 대답 없이, 그 치고는 빠르게 걸으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딸랑, 거리는 풍경소리가 공간 안에 멍하게 울렸다. 그와 그는 가게 밖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미키는 그것을 응시하다가, 그의 시선이 가게 안의 꽃병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눈길은 가장 햇볕이 잘 드는 장미 화병에 머무르더니 입가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어, 하고 소리를 내자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발 끄트머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칸자키 토지를 바라보며 뒷머리를 쓸었다. 설마, 하는 의구심이 몸을 키웠다. 마음이 조금 간질거렸다. 딸랑,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기름 검댕을 얼굴에 잔뜩 묻힌 오빠가 잠시 나갔다오겠다고 말했다. 미키는 손을 흔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천천히, 그의 오빠가 앉았던 자리로 다가갔다. 쪼그려 앉아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초록색 이파리가 인상적인, 붉은 꽃이 아름다운 그것이 시선을 홀릴 정도로 예쁘게 피어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괜히 입술을 입 안으로 숨겼다가, 후, 하고 한숨처럼 작게 내뱉었다. 그녀는 그것이 처음 그 곳에 놓였을 때를 가만가만 밟아갔다. 괜히 오빠의 공구상자를 정리해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손을 뻗을 때도, 자전거를 볼 때도, 문 밖을 볼 때도 묘하게 시선의 귀퉁이에 있었다. 항상 볼 수 있는 자리에 ‘그냥 누구’가 준 걸 놓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었다. 가만 생각하면서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하게 시시한 결말 여러 개를 상상하다가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 발을 까딱였다. 오빠를 찾아오는 숫기 없던 고등학교 1학년은, 이제 2학년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길 할 때 마다 사소한 것에도 바짝바짝 놀라던 걸 보면 그렇게까지 붙임성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성격이라면 원하는 걸 줄 때 까지 빙빙- 또 빙빙- 돌아가는 걸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망상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화병에 담긴 빨강과 초록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어쩐지 볼이 간지럽다고 생각하다가 아니겠지. 라고 말하면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아마도 오빠가 돌아올 때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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