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토도] 無音




   집의 크기에 비해 작은 세탁기 소리는 요란하다. 논문 때문에 억지로 틀어놓은 컴퓨터의 쿨러는 버벅이면서 돌아간다. 억지로 맞지 않는 체인을 끼워 버겁게 돌아가는 자전거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이든지 오래 쓰는 주인 탓이다. 냉장실이 냉동실보다 두 배 정도 되는 일문형 냉장고는 제대로 닫히지 않았는지 울컥이는 소리를 억지로 뱉었고, 여름의 끝머리에서 돌아가는 에어컨은 덜거덕거리는 낡은 트럭의 짐좌석 마냥 버걱버걱, 서툴고 안 맞는 소리를 냈다.

   마나미는 녹기 시작한 얼음을 손잡이에 흠집이 난 머들러로 저었다. 보리차처럼 연하게 내린 헤이즐넛 원두는 제법 좋은 향을 냈다. 좋아하는 맛이었다. 그는 달그락거리는 유리컵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는 눈을 깜빡였다. 거실의 전면 유리창에서는 햇살이 어느 정도의 각도를 두고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한 시간쯤 후에는 집 안이 온통 볕으로 가득 찰 것이었다. 꼭, 그 모습이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틀어주던 인상파의 느린 음악들 같다 생각하며 마나미는 손가락으로 물이 묻어 있는 유리컵을 톡, 톡, 두드렸다.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시계가 째깍이는 소리는 유난히 컸다. 그는 정원에 줄지어 심어둔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정원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마나미는 턱을 괴었다. 넝쿨진 능소화에 야트막한 그늘이 들어 있었다. 여전히 집 밖은 더운지, 색채는 모두 쨍한 여름빛을 하고 있었다. 마나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로드를 타기에는 좋은 날씨일지도 모른다. 그는 벽에 걸려있는 두 대의 자전거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볼을 톡, 톡, 건드렸다. 낡은 에어컨의 날개는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그래, 이 집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서툴고 엉성한 기계들과, 마나미 산가쿠 뿐이었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인식이었다. 그의 자취방에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거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게되는 게 지금이라니. 제 풀에 스스로 토라져 마나미는 입술을 뾰쪽하게 내밀었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꼭 오리 주둥이 같구나’ 하고 말할 제 연인은 지금 ‘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청소기가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자고 있거나, 안쪽 방 안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마나미는 하품을 했다.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하암, 하고 났다.

   여전히 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나미 산가쿠’ 뿐이었다. 동시에, 그는 그의 이명異名을 떠올렸다. ‘슬리핑 뷰티’였다. 집단의 뒤쪽에서는 ‘숲의 닌자’ 라고 불렸다. 숲마저 잠들게 하는 왕자님이던, 숲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던 닌자던. 그 기원은 같았다. 소리가 없이 가속하고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그의 주행법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내는 건 입뿐이지만, 이도 산악 포인트를 앞두고서나, 아니면 진심으로 스퍼트를 낼 때에는 굳게 다물리곤 했다. 그의 가장 옆에서 달렸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나미는 머들러를 저었다. 결론을 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소리가 나질 않는’ 사람이다. 기름칠이 잘 된 기계마냥 소음이 없었다. 분명 이상한 일임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나미는 가만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의 회상은 공상처럼 날개를 달고 퍼져갔다. 소리를 들으려고 했음에도 늦여름의 기계 소리에 가려 토도 진파치, 라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소음들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너무 조용한 탓이었다.

   토도는 집 안에서 조차 발소리가 없었다. 그림자가 없는 요괴나 산신 같은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연식이 된 단독두택이 으레 그러하듯, 그의 집은 여러 소리를 담고 있었다. 분명 집 주인, 본인의 취향일 나무 바닥은 한없이 삐걱였다. 마나미는 그 곳에 발을 디디고 키스를 할 때 마다 한 사람 분의 무게가 기괴한 음을 내던 것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토도가 그곳을 거쳐 제게로 올 때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마나미는 낱개 포장된 다쿠아즈의 껍질을 깠다. 비닐 포장지가 낙엽 같은 음을 냈다. 역시 이 집안에서 소리를 만드는 건 마나미와 각종 낡은 기계들이었다.

   로스가 없다, 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그래, 그림자가 없는 것 같다, 는 말이 조금 더 정확했다. 언어가 비현실과 초자연의 영역을 넘나들어야 겨우 마나미가 느끼는 토도 진파치를 묘사할 수 있었다. 그는 소리가 없었고, 그렇기에 마나미는 그의 심장소리마저 잊을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가령 지금처럼 집 안에서 기계들이 잔뜩 돌아가고 있고, 저마저 소리를 내고 있으며, 문을 닫을 때 나는 쾅-! 소리도 없는 주제에 집 안에 없는 것처럼 조용할 때가 그러했다. 마나미는 입 안에 디저트를 잔뜩 우겨넣고 헤이즐넛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뒷맛은 썼다. 연하게 내렸음에도 언제나 그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 바닥은 그가 움직일 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발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는데도 여전히 체중이 실린 곳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이곳을 어떻게 소리 없이 걸어다니는 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는 소리 없는 방 안을 훑었다. 서재는 사람 온기 하나 없이 조용했고, 안방은 커튼이 닫혀 있었다. 이 시간대의 토도 진파치는 커튼을 닫지 않는 것이 취미임으로 안방은 들여다볼 것도 없었다.

   능소화가 소담스럽게 핀 정원에는 길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나미는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음악마냥 자리했다. 혼자 살기에는 넓지, 라고 말하던 그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난간을 잡고 계단을 곧장 올랐다. 그는 손님 방으로 쓰는 작은 방 앞에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공기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문을 열었다. 녹슨 경칩 소리가 들렸다. 을씨년스럽게도 느껴지는 그것을 길게 밀자, 볕이 가득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가 보였다. 잠시 졸고 있는 듯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보였다. 손님방과 연결되어 있는 작은 베란다에는 아까 같이 빨았던 흰 누비이불이 널려 있었다. 마나미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토도는 아직 깨지 않았다. 숨소리 하나 없이 잠든 모습은 조각마냥 보였다. ‘살아 있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뻤다.


   무심코, 자고 있는 그에게 손을 뻗을 나이는 지났다. 그의 자는 모습은 익숙했다. 많은 밤을 같이 지냈기 때문이다. 철없고 어린애 같았던 고등학교 1학년이, 졸업 논문을 쓰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 없이 자고 있는 그를 마주보면 어쩔 수 없이 그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거나, 심장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시끄러우면서 자고 있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조용한 게 신기했다. 마나미는 침대 옆으로 가만히 다가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주행을 더 보고 싶어 무작정 따라갔던 때를 반추했다. 시끄럽게 조잘거리면서도 댄싱을 할 때 상체가 움직이지 않는다던가, 소리 없이 가속하며 중력 없이 산을 오르던 모습이 깔끔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처럼 소리가 없었다. 로스가 없어서 그렇게 클라임을 한다-는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그는 산신 같았다. 저와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마나미는 가만히 움직이는 그의 가슴께에 제 귀를 댔다. 콩, 콩,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토도 진파치라는 사람이 담고 있는 가장 작은 소리였다.

    코 끝이 간지러웠다. 두근거렸다. 제 심장도 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음을 느꼈다. 괜히 볼이 뜨거워졌다. 볕이 환하게 들어오는 오후, 갓 빨래한 폭신한 이불, 가만히 자고 있는 제 연인. 두근거리는 충족감이 심장소리처럼 마나미의 몸을 천천히 채워가기 시작했다. 마나미는 가만히, 저가 토도의 주행이 끌렸던 이유를 떠올렸다. 그의 주행은 꼭 토도 진파치라는 사람의 본질을 닮아 있었다. 소리가 없고, 진중하면서도, 생각이 많고, 동시에 한없이 가볍고, 중력이 없는 듯 설레이는.

   새삼스럽게 깨달은 일련의 사실들이 그의 볼을 간질였다. 마나미는 가만히 심장소리를 듣다가 그의 가슴에 볼을 부볐다. 타이르듯 마-나-미- 하고 제 이름을 늘려 부르는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슬리핑 뷰티를 깨우는 예의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언제나 남의 눈을 신경 쓰는 그가 남에게 들려줄 리 없는, 날것 같은 목소리였다. 마나미는 입술을 움직이다, 무릎으로 섰다. 그는 토도의 입술에 가만히 제 입술을 겹쳤다.

   입술이 가볍게 부벼졌다. 물기 없는 입술은 가볍게 스치다가, 이내 서로의 숨결을 탐하기 시작했다. 작은 호흡에도 숨소리가 없는 남자가, 저로 인해 호흡끼리 난잡하게 섞이는 소리를 내게 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었다. 마나미는 제 쪽으로 다가오는 그를 끌어안았다. 아까까지 귀로 듣던 심장소리가 제 품 안에 가둬지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서 햇살 냄새가 났다. 제 혀를 엮어오는 그의 숨을 마나미는 가두듯 잡아 삼켰다. 제 심장소리가 울컥이는 소리를 내뱉는 일문형 냉장고마냥 크게 덜컥이는 것을 느끼며,


    마나미는 사랑해요, 하고 속삭였다. 제가 낼 수 있는 소리 중, 그에게 주기 가장 적당한 말이었다.



- 2018년 8월 29일 작성

'Cosm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키칸] Rubato  (0) 2018.10.28
[마키칸] 開  (0) 2018.10.28
[신토도] 무제  (0) 2018.10.28
[마나토도] Goodbye Summer  (0) 2018.10.28
* Cosmology *  (0)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