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토도] Goodbye Summer

따듯한 손을 잡으면 햇살 냄새가 났다.


   의외로 주름이 없는 와이셔츠와 교복 바지. 언제나 바지 한 쪽은 걷어 제멋대로 입었다. 양말은 언제나 흰 색이고 복사뼈를 덮지 않는다. 실내화의 밑장은 머리카락 색과 닮은 파랑. 클릿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얀색과 파란색을 절묘하게 섞어둔 모습은 쨍한 하늘 아래에서 더 반짝이곤 했다. 토도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으며 고개를 들었다. 언덕 끄트머리에 걸려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는 ‘꼭’이라는 말과 어울렸다. 넘치듯 화려하거나 모자라듯 박색하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 두던 그는 그 자리에 알맞게 들어맞았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가까이 있는 벚꽃 가지를 흔들었다. 흔들리듯 떨어지는 꽃이파리를 손바닥에 가두어 잡으면서 토도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마나미 산가쿠는 그런 사람이었다. 토도가 회상하던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풍경에든 그는 부드럽게 녹아 있었다.

   거리를 재는 감각이 특출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균형 감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위원장’에게 언제나 혼나고 있었고, 교무실의 단골손님이었다. 하지만 토도에게는 달랐다. 그는 꼭 맞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곤 했다. 생각하고 했다면 ‘영리하다’라고 칭찬했겠지만 그걸 본능적으로 해낸다는 게 대단했다. 토도는 천천히 걸었다. 구두 아래에 밟히는 자갈이 자박자박하는 소리를 냈다. 몇 번이고 자전거로 올라갔던 산길을 지그시 밟아 오르면서 토도는 그를 반추했다.


   “토도 선배-”


   였나. 토도는 제 입으로 부른 제 이름이 제법 어색했다. 입술이 간질거렸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초봄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코트 자락을 살랑거렸다. 제 이름을 머금는 목소리는 낭랑했다. 투명한 유리컵에 가득 담긴 물, 그 안에 고여 있는 햇살처럼 낭랑했다. 끈적하고 푹푹 찌는 여름 공기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꼭 제 뒤에서, 흔들림 없이 울렸다. 앞에서 달리는 제게 토도 선배, 토도 선배- 토도- 선배-, 하고 조르듯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도 토도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요. 승부하지 않을래요? 산이 저기 있는데 왜 참아야 하는 거예요, 좀 더 달리고 싶어요. 좀 더 속도 올릴 수 있단 말이에요. 오늘은 컨디션 나쁘죠? 오늘은 기분 괜찮죠? 좋으니까 내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멋진 기획이죠? 칭찬해주세요. 제가 이끌까요? 햇살이 좋아요. 좀 더 전력으로 달리고 싶어요. 산 앞에서 참는 건 별로란 말이에요. 와, 정말 가도 괜찮아요? 락차 조심하세요. 우린 좀 더 승부해야 하잖아요. 와, 나 지금. 살아있는 것 같아.

   동물과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다. 야옹, 만 해도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고양이마냥 그의 토도 선배-는 여러 말들을 담고 있었다. 토도는 뒤를 돌아보았다. 끝없이 올라온 오르막. 그 끝은 아찔할 정도로 아래에 있었다. 언제나 리들리를 타고 오르던 길을 발로 오른다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꽃다발의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하우스에서 길렀다는 해바라기의 노랑은 여름마냥 쨍했고, 투명한 포장지가 반사하는 봄의 햇살은 여름과 다를 바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목소리가 들렸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들마다 햇살마냥 저를 불러오던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꼭’, 원래부터 거기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메아리 같은 일이었다. 토도는 뒷짐을 지고 발걸음을 느긋하게 당겼다. 레귤러로써, 후보로써, 1학년으로써 수없이 밟아온 길이었다. 선배가 이끌었고, 선배를 추월했고, 후배를 당겼던 길이었는데 어째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게 마나미의 목소리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벚꽃 가득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여름 같았다. 정장 위에 걸친 트랜치 코트보다는 얇은 티셔츠와 린넨 바지가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그래. ‘여름’. 토도는 손을 들어 볕을 가렸다. 봄볕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름 한 가운데 같은 것은 ‘마나미 산가쿠’가 여름 같은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토도는 추측했다. 쨍한 파란 하늘과, 둥실둥실한 흰 구름. 그리고 땀냄새 나는 산길과 머리카락 새를 스치고 지나가는 청량한 바람 같은 그를 만나러 가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한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산 너머에서 구름은 호젓하게 움직였다. 바람이 불었다. 살짝 땀이 난 이마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퍽 여름 같았다.

   웃음이 났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가 졸업한다는 게 어색했다. 벌써 ‘어른’이라는 게 서먹했다. 게다가 어쩐지 해바라기를 쥐어줘야 할 것 같았다. 졸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다. 하지만 프리지아니, 장미니 하는 다른 꽃들보다는 그게 그와 꼭, 맞았다. 마나미 산가쿠, 라는 이름을 부르면 인터하이 직전까지의 땀내 나는 연습이나, 저를 어려워하던 후배가 알껍질을 갓 깬 새처럼 따라오는 광경이 줄지어 머릿속을 흔들어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손에 들린 포장지에서는 그가 힘을 줄 때 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린애처럼 따끈따끈한 손을 적절한 타이밍에 내밀었다. 토도는 거절할 수 없는 타이밍에 쑥 나오는 그 굳은살 박힌 손가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햇살 냄새가 나는 머리를 제 허벅지에 부비면서 잠을 청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을 때만 다가오는 것이 퍽 귀여워 밀어낼 수 없었다. 토도는 사람 사이의 거리감에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어째 그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이란 말을 지워버리며 꼭 알맞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럴 때 마다 심장이 어색하게 뛰었다. 그 덕에 얼굴이 붉어졌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그는 손을 뻗어왔다. 제 무릎을 베고 있는 채로 손가락을 뻗어 제 볼을 톡, 톡, 건드리면서 ‘볼에 여름이 묻었어요.’ 같은 말을 해왔다. 그는 어린애답게 체온이 높았고, 그보다 고작 두 해 정도를 산 토도에게는 너무나 뜨겁게 느껴졌다. 자신만만하게 웃어줄 타이밍에 저보다 먼저 웃는 그의 미소는 앳된 티가 났다. 그의 소매를 잡으면 햇살 냄새가 나는 것처럼.

   멀리 달아나도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그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해, 여름의 산길만 반추하면 마나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것도 아니면, 고등학교 3학년 여름의 시작은 그가 레귤러로 올라온 것이었고, 끝은 그가 골을 따지 못한 것이었으니 제 여름 모두가 그에게 갇혀 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코네의 산길에 그가 묻어있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토도는 머쓱한 듯 숨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학년 인터하이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 보다 키가 7.25cm는 컸다 들었다. 낙하하는 벚꽃의 속도는 초속 5cm라고 들었다. 그는 딱 1.5 벚꽃만큼 자란 것이다. 덜 큰 해바라기 꽃잎 같이 자란 것이 어색했다. 그는 3학년 인터하이에서 산악상을 땄고, 자유롭게 달렸으며, 후배들 앞에서 나름대로 ‘존경할만한 선배’처럼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 다 글자로만 익혀 실제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마나미의 후배들 중에선 토도를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등을 보고 달려온 아이들은 그가 누구를 쫓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졸업으로 인해 우는 후배도 있을 것이다. 토도는 제 졸업식 때 세상이 망한 것처럼 울던 그를 기억했다. 그는 교복 마이 위에 얇은 후드 집업을 걸치고 있었다. 손 끝을 모두 덮는 소매에서는 햇살 냄새가 났다. 볕에 잘 말린 냄새. 숨을 들이쉴 때 마다 코를 간질이는 여름 같던 햇볕. 노을질 때 까지 빈 교실에서 울던 목소리. 토도 선배, 토도 선배, 하고 제 이름만 부르던 것까지.

   그런 마나미를 좋아했다. 모두가 돌아갔을 때 빼꼼 찾아와 거절할 수 없게 손을 내밀었다. 딱히 그를 기다리던 건 아니었다. 팬클럽과 한 명 한 명, 성실하게 인사를 하다 보니까 그 시간이 된 것이었다. 땀냄새가 났다. 산에 올랐니? 하고 물어보자 토도 선배,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가 산에 올라다녀왔음을 알 수 있었다. 바깥에 핀 벚꽃은 노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아닌데도 숨이 가빴다.

   그가 숨을 가쁘게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흡을 천천히, 의식적으로 하라는 충고에 마나미는 다시 토도 선배, 하고 불렀다. 물 먹은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면, 여름보다 더 파란 그의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토도 선배, 토도 선배, 하고 잊을리 없다는 듯 부르던 그 목소리에는 여러 파편들이 담겨 있었다. 조각 같은 여러 말들이 제 이름의 모습으로 귓가에 다가왔다. 그는 왜 그가 산을 달려갔는 지 알 수 있었다.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달리는 것조차 가르친 선배가 떠난다는 것을 나름대로 납득하고 왔을 것이다. 오랜 버릇처럼 눈물이 멎을 때 까지 경치를 보다가, 문득 오늘이 끝나기 전에 돌아왔을 것이다. 레펜과 유니폼을 입고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지 않고, 오늘 내내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에 아직도 햇살 냄새가 나는 교복을 입고 제 앞에 찾아왔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약간 달렸고, 토도를 잡고 나서는 정리한 말들이 다시 삐죽삐죽하게 어질러졌을 게 분명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토도 선배, 라는 목소리가 알려 주었다. 세상이 떠나가듯 이름을 부르다가, 좋아해요 라고 내뱉었을 때, 토도는 제가 여름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인터하이가 끝난 늦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초봄에도. 계절이 한 번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를 여름의 티 없이도 파란 하늘에 가둬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강제력에 토도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알려주기에는 제 사랑이 꼭 족쇄같았다.

   나는 새에게 저라는 중력을 더하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 물은 물처럼 산은 산처럼. 하늘이 열리고 해가 뜨고 다시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꼭 맞는 것들을 흐트러트리는 건, 토도 진파치의 미학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뒤로 물러섰다. 어린애이던 그를 추억하며, 지금 산을 오르는 것도 ‘졸업’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를 끝없는 여름 속으로 수렴하게 하는 그에게서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제 ‘맞사랑’이자 ‘외사랑’인 감정의 종착이라, 토도는 생각했다.


   그의 연락을 받는 것은 오늘로써 끝이었다. 오르막은 꼭 추락을 동반한다. 제 사랑의 정점은 추락과 마주닿아 있었다. 토도는 「여름」을 허물처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꽃다발을 주는 것은 제 졸업에 대한 자기만족이었다. 그의 주행에 거슬리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요, 라고 서툴게 말하던 그가 지금 같은 감정을 품고 있으리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주고 싶었다. 마지막은 꽃으로 장식하는 건 어쩐지 풍류 있게 느껴졌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아, 하고 그는 숨을 들이켰다.


  토도는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바람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체인이 돌아가고 크랭크가 움직인다. 기어를 차카차카, 하고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찍 걷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보다 느리다니,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하면서 토도는 해바라기 다발을 쥔 손을 뻗었다. 그는 1.5 벚꽃만큼 자랐고, 토도가 모르는 후배를 갖고 있었다. 3학년이었고, 아직도 3번 등번호를 갖고 있는 남자였다. 제가 물려준 것을 제 식으로 소화해 냈었고, 아직도 햇살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여름. 그래, 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봄에 마주하기에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토도는 손을 뻗었다. 보급식과 물병을 건네주는 것처럼. 길가에 서서. 그는 이곳으로 올 것이다. 다시 기어가 올리면서 이곳으로 주행해 올 것이다. 자유롭게. 아무것도 거리낌 없이. 멈추지 않고 꽃다발을 받아가면 제 졸업은 성공이라고 생각하면서 토도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제 발 아래에 있는 오르막을 굽어 살피듯 바라보았다. 멀리서, 파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저를 봤는지 표정이 밝아진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발에는 망설임이 없다. 그의 코스 선택은 1학년 때 보다 세련되어졌다. 같이 달리면 여전히 제가 이길 거지만, 그래도 1학년 때 보다는 애를 먹을 것이다. 산신이라는 칭호를 물려주기에 알맞게 컸다. 그래 그는 꼭 사랑하기에 알맞았다. 저를 위해 준비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다. 졸업 한 이후 만져본 적 없는 그의 손가락이, 소매가, 모두 여름의 햇살 향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토도 선배!”


   하고 불러오는 목소리에 토도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대로 스쳐지나가길 바라면서 손에 힘을 뺐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손에서 손으로 넘어갈 때 투명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좋았다. 적당히 바람이 차 있는 튜브가 도로에 닿는 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신나 있는 지는 알 수 있었다. 놀잇감에 들뜬 강아지 같았다. 토도는 멀리 내리막을 내다보았다.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벚꽃 핀 도로에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름 꽃과 그는 퍽 어울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알맞은 조합인 것처럼 마나미 산가쿠와 해바라기 또한 꼭, 맞는 조합이었다. 토도는 피식피식 웃었다. 이제 졸업이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았다. 걸어온 길로 다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의 자전거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토도는 걸음을 멈추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해 관성처럼 앞으로 갔다가, 제게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소년이라기보단 남자에 가까운 그는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들리 안 가져왔어? 라고 묻는 목소리에 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장에는 별로잖아, 라고 말했더니 그는 납득이 안 간다는 듯 토도 선배- 하고 저를 불렀다. 조르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달래야 할 타이밍이었다. 3년 전에 체득한 화술이었다. 그의 시선은 똑바로 토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힘들게 올랐으니 내려갈 차례잖아, 마나미. 하고 말했더니 마나미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졸업식에 늦었어, 라고 말하자 토도 씨는 내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네? 하고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그럴 것 같았단다, 라고 말하면 마나미는 햇살처럼 웃었다. 그는 길가 한 가운데에 제 자전거를 세워놓고선 갑자기, 손을 잡았다. 그의 소매에서는 잘 말린 볕의 냄새가 났다. 손가락은 여전히 뜨거웠다. 애 같아, 라고 말하자 이제 졸업이야 라고 대답했다.

   그는 키가 컸다. 1.5 벚꽃만큼. 덜 자란 해바라기의 꽃잎만큼.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여름만큼 웃었다. 내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지? 라고 묻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제가 졸업하던 때처럼 심장이 어설프게 뛰었다. 언덕을 전속력으로 올라온 것은 마나미인데, 제 심장이 끝없이 펌핑하고 있단 건 좀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토도는 문득 여름 같아, 하고 중얼거렸다. 마나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흘렀다. 토도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마나미는 푸스스 웃었다. 더운 날의 아쿠에리스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 꼭 같은 걸 생각했어 토도 선배,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소나기 이후 갠 하늘처럼 맑기만 했다. 아까의 불퉁했던 볼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도 토도 선배가 여름 같아서, 지금이 꼭 여름 같아.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토도가 품고 있는 두근거림의 이유가 되기에 알맞았다. 그는 제가 받은 꽃다발을 벚꽃나무 아래에 있는 그에게 대보았다. 나도 그래서 해바라기를 줬었잖아, 라고 말하는 마나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앳된 티가 났다.

   꼭 알맞게 다가오니까 밀어낼 수 없었다. 마나미는 꽃다발을 풀었다. 그는 잘 자란 해바라기를 토도에게 두어 개 안겨 주었다. 산길을 올라가는 용달 트럭이 빵빵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나미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토도에게 다가왔다. 숨 막힐 것 같은 노랑이 눈 앞에 있었다. 그의 다가옴에는 나름의 이유와 타이밍이 있어서, 그것을 거절하거나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저를 위해 준비된 사랑, 준비된 타이밍 같다고 생각했다.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느끼게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여름 같았다. 봄인데도 산 정상의 볕은 쨍했다. 여름 같이 눈을 마주치면서 웃는 미소에 어떻게 당할까. 햇살이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볕 냄새가 났다. 아득했다. 아찔했다. 졸업식엔 얼굴을 비춰야하지 않겠느냐 애써 묻자 그럴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 혼났다. 토도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깜빡이고 있자, 마나미는 심호흡을 했다. 숨을 털어내듯 후, 하고 불었다. 이번엔 내 졸업식이니까 토도 선배가 울 차례지? 하는 목소리는 가벼워서 현실감이 없었다.

   달싹이는 입술이 담고 있는 목소리는 몇 해 전 토도의 졸업식과 같은 말이었다. 여름, 그래. 여름 같은 말이었다. 순간 현기증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뭐라고 거절할 거야? 라고 묻는 목소리는 장난스러웠다. 거절할 말이 없음을 알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저 청량했다. 심장이 엇박자로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목 끝에서 쿵, 쿵, 뭔가가 울리는 것도 같았다. 그의 뒤편에서는 벚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토도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저, 여름 같은 광경이었다.



- 2018년 8월 1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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