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토도] 어떤 여름


2019. 6. 03 마나토도데이 막차






01.

여름 여백

 

멀리서 공을 차는 소리가 들린다. 휘슬 소리와 약간의 함성은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나미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느린 목소리로 백인일수를 읽는 선생님의 목소리보다 저 쪽이 더욱 생기 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턱은 괸 채로 눈짓을 해 열린 창문을 빼꼼 들여다보았다. 익숙한 선배가 눈에 들어온다. 머리카락을 팔랑거리고 있다. 골을 넣었는지 양 팔을 치켜들고 운동장을 돈다.

선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퍼진다.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몇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마나미는 뒤늦게 알아챘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두어 바퀴 돌리다가 떨어트렸다. 이 시간에 깨있는 건 드문 일이라 선생님의 시선이 묘하게 제 쪽으로 고이는 것 같았다. 마나미는 어 설프게 웃으면서 교과서로 머리를 쳐박았다.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책에서는 잉크가 바짝바짝 마른 냄새가 났다.

운동장을 박차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막아! 막아! 하는 외침과, 토도를 연호하는 목소리는 비율 좋게 섞여있다. 들키지 않게 고개를 빼고, 운동장을 바라보면 드리블을 하면서 두 명을 재치는 선배가 보였다. ‘요령이 좋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운동까지 잘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마나미는 괜히 볼을 긁었다. 간간히 움직일 때 마다 흰색에 눈이 부셨다. 다시 골문이 흔들렸다. 토도의 어시스트로, 모르는 선배가 골을 넣었다.

토도는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 동작에도 소리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흙먼지가 소담스럽게 피어오르고, 이름 모르는 선배에게 안기듯 업힌다. 잘했다는 듯 어깨를 팡팡 치다가 내려가는 모습이 의외였다. 신카이나 아라키타에게도 저런 식으로 대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마나미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연필 끄트머리를 물었다. 육각형의 대에 잇자국이 생겼다. 상대 팀인 것 같은 아라키타의 얼굴이 마분지처럼 구겨져 있었다.

여기서 지면 아이스크림 사야 한다고! 라면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키타였다. 마나미는 눈을 깜빡였다. 자꾸만 신경이 창밖으로 쏠렸다. 발을 꼼질거리면서 바깥을 보고 있자 선생님은 협탁을 두어 번 탁탁, 쳤다. 저기 뭐라도 숨겨놓았느냐고 능청을 떠는 선생님은 토도인가, 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기 멋진 선배는 백인일수 하나 못 외우는 사람을 싫어해요- 라고 대충 중얼거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마나미는 대충 흘려들었다.

골을 넣은 다음의 소강도 잠시, 다시 볼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뻥뻥 잘도 차대는구나, 하면서 선생님은 혀를 찼다. 옆자리에 앉은 반장은 가만히 마나미의 교과서 페이지를 진도에 맞추어 넘겨주었다. 고마워, 하고 교과서 귀퉁이에 쓰면 별거 아니라는 소곤거림이 다가왔다. 바람이 불어 커튼이 날렸다. 토도는 여전히 맹렬하게 뛰고 있었다. 패스를 원하는 듯,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했다. 자전거를 탈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이야기를 한다. 저런 식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맹렬하게 부르진 않는다. 오버워크일 때도 명확한 이유를 들어 혼이 난다. 저렇게 이름을 자주, 큰 소리로 불리는 건 어떤 느낌인지 영 알 수 없었다. 바람이 멎어 되돌아오는 커튼은 머리를 넘어 오지 못했다. 상체가 흰 커튼에 가려졌다. 이것도 나름의 타이밍이라고, 대놓고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도는 드리블을 해서 두 명을 거쳤다. 아라키타를 솜씨좋게 재치고서 골에 공을 찼다. 약간의 페이크를 걸었는지, 공이 들어간 방향과 정확히 반대로 골키퍼가 튀어 올랐다.

솜씨 좋은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과정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다시 세레머니를 하면서 운동장을 돌던 선배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꽤나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나미! 라고 말하면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무시하기도 머쓱해 마나미는 손을 흔들었다. 흰 커튼이 사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손가락 포즈를 취하고서 토도는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달리고도 지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나미! 하고 자신의 이름을 세게 부르는 선생님에게 애매하게 웃어보이면서 커튼을 머리에서 치웠다. 고개를 숙이고 꾸중을 들었다. 바람은 다시 불지 않았다.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자 앞에서부터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앞을 보자 하얀 종이가 넘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운 시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 베껴 적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뒷머리를 긁었다. 교과서를 대충 펴 아무거나 찾고 있자니,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어떡하냐는 질문이 들려왔다.

 

그럼 러브레터라도 쓰던가.”

 

러브레터라는 말에 교실이 술렁거렸다. 시는 어차피 절제된 언어에 넘치는 마음을 담는 것이라는 말이 뒤따라왔다. 마나미는 교과서를 팔랑팔랑 넘겼다. 반장은 이미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久方のど-까지 읽고 눈을 흘기는 걸 그만두었다. 마나미는 연필을 다시 한 번 굴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 초여름은 꿉꿉하기만 했다. 너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선풍기가 천천히 돌았다.

바람이 닿지 않을 때는 여름이 끈적였다. 펜을 돌리고 또 돌려도 낼 수 있는 문장이 없었다. 교과서를 앞으로 넘겨도, 뒤로 넘겨도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고어로 적힌 것들은 지금의 말들과는 사뭇 달라서 뜻이 착- 와 닿지는 않았다. 어릴적 하던 카루타에서 몇 개는 본 것도 같은데 그게 지금의 기분에는 영 달라붙질 않았다. 마나미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다들 무언갈 열심히 적고 있었다. 편지를 적는 녀석도 두어 명 보이는 것 같았다.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마나미 쪽을 힐끔 보더니, 다음 시간까지 꼭 적어오라고 당부를 하면서 교실을 나갔다. 반장은 아무 백인일수나 적으라는 듯 교과서를 다시 넘겨주었다. 마나미는 커튼을 걷었다. 잔바람에 자꾸 펄럭여 얼굴을 때리는 게 기분이 나빴다. 커튼을 걷으니 여름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새 들어갔는지 운동장에 토도 선배는 보이질 않았다. 아쉽네, 라고 생각하면서 마나미는 책상에 고쳐 앉아 빈 종이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니 적을 것도 없었다. 지독한 여백이었다.

 

 

 

02.

여름, 휘파람새

 

토도는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지저귀는 것이 다분히 익숙하다. ‘하늘이 주신 세 가지끊이지 않는 토크가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감 넘치는 저 남자가 자신있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들엔 거짓이 없다. 마나미는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워밍업 겸 스트레칭을 하고, 롤러를 타고 오니까 날이 너무 뜨거웠다. 출발하기 전에 무의미하게 체력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자전거 핸들을 잡고 졸까, 하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생각이많아 그것도 쉽게 되질 않았다.

시끄러울 정도로 이어지는 말은 사려깊고 유창하다. 대화를 끊어지지 않게 주고받는 일은 의외로 어렵다. 마나미는 그가 완급조절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들어줄 때는 들어주고, 뽐낼 때는 뽐낸다. 수컷 공작 같다. 깃을 쓰지 않을 때는 잠시 포개어 접어놔야 펼쳤을 때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법인지도 모른다. 철 이른 매미가 맴, , 울었다. 자전거를 타지도 않았는데 땀이 주르륵 흘러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로다가 무언갈 물어보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시키바가 몇 마디를 더했다. 토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듣다가, 그것에 대한 조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페달링을 할 때 힘을 어떻게 주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설명했다. 이 또한 재잘재잘, 하는 새소리와 닮아 있었다. 마나미는 피피, 피피, 운다는 휘파람새를 떠올렸다. 오늘 배운 고전에 있었던가 따위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볼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아쿠에리스가 아니라 포카리지만.”

와아, 선배. 나 주는 거예요?”

와하하, 마나미. 그래. 산신으로부터의 공물이다!”

 

토도는 마나미의 손에 페트병을 놓아주고는 열을 쟀다. 제 손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후에는 다시 쿠로다와 아시키바의 옆으로 돌아갔다.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시끄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쩐지 쨍한 햇볕 아래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멍하니 계속 바라보고 있자, 토도는 눈을 마주쳐왔다. ---!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어째 고전 시간에 들었던 것 보다 더 명랑하게 들려왔다.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살아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사람 사이에 둘러 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발랄하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이 끌릴 정도라고 생각한다. 마나미는 클릿을 신은 발을 까딱거렸다. 이제 슬슬 갈까? 토도가 말했다. ! 하고 소리치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매미 소리만큼 크게 울렸다. 마나미는 서둘러 반쯤 마신 물병에 그가 건넨 음료수를 넣었다. 물병의 캡을 닫고, 패트병을 만지작거리다가 프레임의 후면에 꽂아 넣었다.

빈 통을 보다가, 괜히 자전거를 밀었다. 의욕이 넘치는데? 라고 키득거리는 토도의 목소리는 새파란 색이었다. 마나미는 괜히 그의 리들리 옆에 제 룩을 가져다 두었다. 토도는 그런 마나미를 바라보다가 자전거 안장에 걸터앉았다. 가자, 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와 다르게 그의 자전거 체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질 않았다. 그 기묘한 균형감이 맘에 든다고 생각했다. 낮은 경사를 올라가는 그의 뒤에 자전거를 붙였다.

토도의 리들리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에는 소리가 없다. 다만 그것을 느끼게 하는 건 정강이 즈음에서 느껴지는 살랑거림뿐이었다. 그의 뒤에서 흐르는 공기압을 느꼈다.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것과는 다른 경치였다. 댄싱을 해서 올라가는 구간에서 토도는 소리 없이 가속하더니, 마나미가 따라오는 것에 맞추어 자전거를 옆으로 뺐다. 그가 막았던 바람이 한 순간에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도리질하다가, 마나미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요령 부리는 거야?”

선배는 말이에요.”

 

지금 이야기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입술을 꾸물거리다가 미부노 다다미를 아느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토도는 쾌청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참을 웃었다. 경사도에서 다시 제 앞으로 간 다음 그는 천천히 일수(一首)를 외웠다. 고전 선생님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르게 낭랑했다. 마나미는 소리 없이 움직이는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심장이 점점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언덕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후열에게 지시하는 토도는 명쾌하고 명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도, 타고 있지 않을 때도 그는 휘파람새마냥 짹짹거린다. 그것은 꼭 그가 살아있다는 말 같아서 괜히 볼이 간질거렸다. 언덕에서 단번에 댄싱하는 그를 쫓아갔다. 쭉 뻗은 산, 파란 하늘, 다리에 붙는 여름의 땀방울. 그리고 제 앞을 전력으로 달려가는 소리 없는 선배의 등. 마나미는 그것을 모두 눈에 담았다.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장갑을 벗고 핸들을 잡았다. 아쉽고도 사랑스러웠다. 페달을 멈추면 느낄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의 느낌처럼.

마나미는 입 속으로 그가 외웠던 일수의 목소리를 더듬었다. 새소리처럼 속삭일 수는 없었다.

 

 

 

03.

아무도 모르게 품었던

 

시야가 뱅뱅 돌았다. 내리막 도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눈에 담은 건 하늘이었다. 큰 소리로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축구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 토도가 보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네에, 선배- 라고 말하면서 웃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대하게 굴렀다 마나미! 하고 타이르는 목소리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마나미는 부드럽게 웃었다.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노려보던 토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클라이머는 쿠로다가 인솔해서 내려갔다. 토도는 자신의 수통에 들어있는 물을 마나미의 상처에 한 번에 쏟았다. 아려오는 쓰라림에 얼굴을 찌푸리자 한숨 가득한 걱정이 돌아왔다. 많이 찢어지지는 않은 것 같구나,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이제야 안도가 내리앉아 있었다. 나 때문에 놀랐어요? 라고 묻자 그는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하면서 헬멧을 톡톡,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땀이 났고, 여름이었고, 냄새가 날 텐데. 라고 느릿하게 말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하코네 산을 제법 빠듯하게 도는 코스여서 그랬는지, 벌써 파랗던 하늘에는 뉘엿뉘엿하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황색이 퍼져나가는 옆이 가장 검정에 가까운 색이라고 말했던 건 누구였더라. 마나미는 제 등 뒤로 들어오는 손을 느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얼굴을 찌푸리자 다시 마나미! 하고 이름을 불러왔다.

그가 불러주는 제 이름은 듣기가 좋다. 예쁜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번지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걱정이 묻어 있었다. 쾌정하지 않고 낭랑하지 않은 속삭임 같은 마나미에 귀가 먹먹했다.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어서 마나미는 말과 말 사이의 여백에 왜 넘어졌더라, 를 생각했다. 토도는 여전히 제 앞에 있었다. 내리막도 예쁘게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서 백지에 채울 일수를 떠올렸다.

그게 토도 진파치의 목소리로 되감겼다. 제 안에서 천천히, 삐그덕거리면서 울리는 목소리에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살아있음의 고동으로 뛰는 그것이 묘한 오작동을 일으켰다. 박자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가? 를 의식하게 되니까 신경이 쓰였다. 의식하고 하는 호흡처럼 무언가 거추장스러웠고, 그걸 떨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완벽하게 제 미스였다. 마나미는 아- 하고 말을 길게 늘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라는 말에, 다시 마나미! 라고 크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축구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울리는 소리는 듣기 좋았다.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는 여름의 하늘같았다. 아까 외워준 것 때문에 고장이 났어요, 라고 말한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대신 토도 쪽으로 몸을 기대었다. 머리를 자연스럽게 받혀주는 그에게서는 약한 땀냄새와, 민트향이 났다. 목에 귀를 대자 맥이 일정하게 뛰는 것이 들려왔다.

시끄럽고 재잘재잘거리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단순한 흥미보다 한 걸음 나아선 무언가가 마나미의 가슴에서 콩, , 뛰었다. 퍼져가는 노을을 보다가 마나미는 고전 시간에 받은 빈 종이를 떠올렸다. 괜히 마음에서 애매하게 꿍쳐지는 목소리가 있어, 그는 입을 열었다. 오늘 빈 종이를 받았는데, 거기에 미부노 다다미를 쓸 거예요, 라고 말하자 토도는 자신도 그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입술에서 삐져나오는 좋아는 그 일수에 담겨있는 좋아랑은 느낌이 달랐다.

낙차를 하면 그 날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게 맞는데도, 지금은 달리지 않고 멈춰있어서 한계라기보다는 평온한 느낌을 받고 있는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져가는 노을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 그 가라앉은 분위기가 머쓱했는지 토도는 괜히 그의 상처자국을 보다가 호, 하고 불었다. 오무려진 입술은 노을보다 조금 붉은 빨강이었고, 마나미는 괜히 고개를 숙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애매한 여름이었다.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두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볼을 감쌌다.

이제 일어나라는 듯, 마나미. 하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말하는 제 이름이 놀랍도록 간질거렸고, 심장 고동보다 훨씬 더. 크게 퍼지고 있었다. 귓가에 퍼지는 그것을 무어라 정의해야할지 몰라 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은 여전히 백지 같았고, 마나미는 그걸 보다가 괜히 볼을 긁적였다. 애매한 두근거림이 심장에서 레몬맛 탄산음료처럼 팟, , 튀었다. 아쿠에리스와 포카리스웨트와는 다른. 그런. , 쏘는, 느낌으로.

마나미는 자리에 앉았다. 아픈 자리를 코치에게 보이자 코치는 얼굴을 찡그렸다. 자전거 두 대를 수납한 다음 토도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마나미의 옆자리에 앉았다. 좁은 다마스 좌석에 땀이 나 끈적거리는 살결이 닿았다. 천천히 달리는 차 안에서, 마나미는 여러 가지의 말을 웅얼거리다가 한 마디도 뱉지 못했는데, 이건 그가 입술을 달싹일 때 마다 얼굴이 붉구나 마나미야.’ 하고 굳이 속삭인 토도 때문이었다.

굳이 여백으로 남겨두었던 곳이 콕, , 찔렸다. 마치 귓가 가까이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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