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토도] 그해 여름 소년 7

프로 로드레이서 마나미 x 프로 로드레이서 토도 

연령, 미래 조작, 기억상실 요소 있음. 







"모든 게 완벽하지 않아요?"




***


   아찔할 정도로 파란 파랑은 여름의 절정과 닮아 있다. 그에게는 내리쬐는 뙤약볕이 어울렸다. 반짝반짝한 하얀 자전거를 몰고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 좋았다. 팀이나 의무나 하는 속박보다는 그런 것을 모두 잊고 자신만을 위해 달려 나가는 ‘자유로운’ 모습이 좋았다. 타고난 대담성과 선천적인 센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정상을 위한 갈망. 그는 아름다운 클라이머였다.

   꿈꾸듯이 날아오른다. 전신을 잡아 끄는 중력을 당연하다는 듯 거스른다. 핸들을 잡는 것도, 기어를 조작하는 것도 모두 감각적으로 해낸다. 장갑을 끼지 않는다. 바람과 비와 햇살과 추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주하는 감각들에 집중한다.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모든 기관을 사용한다. 그의 클라이밍은 본능적이다. 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페이스 배문을 하는 것도 모두 전부.

   쏟아낸다. 아끼지 않고. 그런 마나미 산가쿠가 느끼는 것은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그는 생을 쟁취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래서 자전거 위의 그는 진심일 수밖에 없다. 경기의 스릴 또한 삶의 의미다. 그런 모든 감정들이 그의 자전거 안에 담겨 있다. 

   심장이 끊임없이 펌프질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소를 소비한다. 이 연소 작용 속에 삶이 있다. 마나미 산가쿠는 기본적으로 자전거가 있어야 완결될 수 있는 남자다. 그렇기에 마나미가 달려 나간 길에는 궤적이 남아 있다. 분위기가 술렁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나간 길을, 떠나간 모습을 보게 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한없고, 끝없이. 

   반짝이고 찬란하다. 


   눈앞에는 마나미가 있었다. 그는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코네 학원, 이라고 적혀 있는 네 글자가 반짝였다. 토도 선배, 라고 부르면서 부드럽게 웃는다. 목 뒤를 살짝 덮는 머리카락을 여름의 끈적이는 바람이 흔든다. 그 순간 세상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토도는 손을 흔들었다. 마나미는 천천히 다가왔다.

   첫 해 여름에는 같이 인터하이에 나갔다. 마키시마가 막아서 나가질 못했다. 그 틈을 마나미가 비집고 올라갔다. 그 짧은 순간 그에게 무언갈 전달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이널리스트가 되었다고 들었을 때 그에게 자유롭게 달리라 말해두었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눈물이 멎을 때 까지 경치를 보고 왔다는 그의 어깨를 안아주진 않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해째 여름에는 그의 인터하이를 보러 갔다. 겨울의 산신파티에서 안경과 못 다한 결말을 내주기 바랐기 때문이다. 사실, 산신의 칭호를 물려주는 것 보다 그에게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의 자전거에는 생각이 묻으면 안된다. 오감 전체를 사용한 자유로움. 삶에 대한 갈망, 그 갈증 나는 순간이 그를 빠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미처 해소할 수 없는 열기를 기대왔다. 입을 맞추었다. 그의 첫 키스였다.

   세 해째 여름에는 그가 우승컵을 놓친 것을 위로했다. 누운 자신 위에서 그는 울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마냥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주고 싶었어요, 선배한테. 삼학년의 삼번. 선배랑 같은 번호였어요. 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사랑해, 라고 말하자 그는 언제나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속삭였다.

   네 번째 여름에는 그와 산악상을 두고 다투었다. 그는 요난대의 초록색 져지를 입고 있었다. 하늘색은 어울리지만 초록색은 좀, 별로일지도. 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서 마나미는 애매하게 웃었다. 요난에는 킨조와 아라키타도 있었다. 토도는 자신의 팀의 클라이머 자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나미와 승부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무리하지 말라는 부장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토도 치고는 드문 일이었다.

   질 수 없었다. 언제나 그의 앞을 달리고 싶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찬란함의 궤적, 그 뒤를 관망하는 게 싫었다. 바람이 불자 마나미는 날개를 펼쳤다. 아름다웠다. 홀리는 기분에 다리가 멈출 뻔 했다. 그와 동시에, 마나미가 달려오는 동안 멈춰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력으로 승부했다. 다리를 아껴두라는 지시를 무시한 건 처음이었다. 토도 진파치는 이지적인 남자다. 끝까지 계산하고 남은 체력을 배분한다. 그러지 않은 것은 마키시마와의 3학년 인터하이 이후 처음이었다.

   그 날의 골인은 산악상과 가까이 있었다. 가장 높은 곳을 밟고서 끊임없이 달렸다. 뒤를 돌지 않았다. 남겨둔 그에게 돌릴 신경이 없었다. 그냥, 마음이 술렁거렸다. 아직 너의 앞을 달렸구나, 하는 두근거림 때문에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뒤에 남아있을 그의 표정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대로 골라인을 밟았다. 자신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산신이라는 칭호와 토도, 라는 이름이 쏟아지는 폭우처럼 들리는 그 곳을 마나미는 후속으로 통과했다. 레이스가 끝나고 나서, 그와 마주쳤다. 비어있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한 번을 져주지 않는단, 말 다음에 그렇게 훌쩍 가버리지 말라는 원망 섞인 말이 돌아왔다. 어르듯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여름처럼 달라붙은 마나미는 그를 끌어안았다.

   부서질 듯 어루만지다가 마주 닿은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를 좁힌다. 날개를 펼쳤던 날갯죽지를 마주 않았다. 손으로 등을 도닥인다. 레이스 후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그는 그저 사랑스럽다. 진파치, 하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어디에도 여과되지 않은 감정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안심한다. 아, 아직,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토도는 눈을 감았다. 피부에 달라붙어 있는 여름이 그저 진했다.

   계절이 돌 때 마다 사랑을 했다.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의 족쇄가 되지 않을까 내내 고민했다. 질척이고 싶지 않았다. 새를 사랑했기에 새장이 되고 싶었으나, 그것을 가둘 수 없다는 것이 토도가 가진 아이러니였다. 그는 마나미가 자유롭게 달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의 선배이자, 그를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바람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언제나 자신을 버릴 수 있었으면, 했다.

   전력을 다하는 그에게 전력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그게, 애매한 상냥함으로 보였을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애매한 상냥함』이란 곧 그에게 전력으로 대하지 않았단 것이다. 준비된 말을 해준다. 언제나 헤어짐을 상상한다. 족쇄가 되는 자신이 싫었다. 그런 방식으로 사랑했다. 비틀린 감정이라고도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결국 극복했잖아. 

  날 싫어하겠지만 결국 달리고 있잖아. 한없이 자유롭게. 형식적인 틀을 거부하고. 매어있지 않은 그는 얼 마나 사랑스러운가. 토도는 제 눈 앞의 마나미를 바라보았다. 매미소리가 들린다. 멈추지 않는 그 데시벨 안에서 그는 토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매도하는 듯한 눈빛, 푸른 눈동자에 담긴 담담한 자신의 표정. 그제서야 토도는 자신의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감을 느꼈다.

   부조리극, 같다고 생각했다. 관객은 무대를 무대로만 인식한다. 극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과 유리됨으로써 부조리극은 그제야 극으로서의 생명을 얻는다. 마나미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야지만 견딜 수 있는 『멍멍이 놀이』처럼. 마나미는 부드럽게 웃었다. 토도는 손을 마주 흔들었다.

   여름의 그는 언제나 한없이 찬란하다. 내내 아름답다. 여름의 색채는 다른 계절보다 극적으로 깊다. 한없는 파란 하늘, 피어오르는 흰 구름. 한없는 여름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마나미를 바라본다. 어쩌면 그가 아니라 그가 달리는 방식을 사랑한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익숙한 거짓말이었다. 그의 부분만을 사랑할 수 있다니. 그것은 토도 진파치가 아는 토도 진파치가 아니었다.

   전력으로 달려온다. 와락, 안겨오는 그의 온기를 느낀다.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굴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제야, 아, 꿈이로구나. 하고 눈치챈다. 인식한 순간 꿈은 꿈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세계가 점점 붕괴한다.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토도는 여름의 햇살에 얼굴을 찡그렸다.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꿈이었구나. 현실 속에서 그는 다시 속삭였다.


   알람시계가 서투르게 울렸다. 급하게 산 것들은 모두 티가 난다. 이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다. 토도는 손을 뻗어 협탁 위의 시계 머리를 쳤다. 끝까지 뻗은 팔에 당겨진 근육이 어색했다. 토도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미처 다 닫지 못한 커튼에서는 빛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밝음에 토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 몸에 느껴지는 어색한 온기를 곱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문을 잠그고 잔 것을 기억하는데도 마나미가 있었다. 놓치기 싫다는 듯 제 허리에 팔을 감고 있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다. 무심코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는 것을 멈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긴 머리카락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의에 덕지덕지 붙었다. 

   몸을 좀 더 일으켜 고개를 돌리자, 열려있는 베란다 창문이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왔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까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소라보다 똑똑한데. 라고 중얼거렸다. 문을 긁어대는 강아지보다 좀 더 번거롭다. 예전부터 영리했다.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것 또한 변하지 않았다. 기억을 잃었음에도 간직하고 있는 그의 습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토도는 알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를 놀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마나미는 언제나 전력으로 달리는 아이였고, 지금도 하고 싶은 걸 자기 방식대로 하고 있을 것이다. 반장과 부모님께는 왜 연락하지 않는 지 알수 없었지만, 그것 또한 마나미의 생각일 것이었다. 애초에 토도는 그들과 연락하기가 거북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 때문에 그들 앞에서는 언제나 죄인이 되고 만다.

   그 시기의 마나미가 많이 힘들었다, 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전해 주었던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야하라 였나. 토도는 그녀의 올곧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왜 그걸 나에게 말해? 라고 묻자 울 것 같던 표정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나미가 왜 자전거를 못 타는지 알고 있냐고 따지던 가냘픈 목소리.

   그 날의 토도는 고민하지 않는다. 시간을 돌려 몇 번이고 찾아간다고 해도 같은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다. 마나미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소녀. 전력으로 페달을 밟아야 이기는 자신과는 다른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겨울바람에 흔들린다. 둥근 안경테아래의 표정은 울음을 참느라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토도는 한숨을 내쉬듯 말한다. 단어의 나열은 무딘 칼날과 같았다.


   ―내가, 『자유롭게 달리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곧 괜찮아 질 거야, 라고도 말한다. 어쭙잖은 위로이자, 당연한 예상이었지만 그녀는 들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토도는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헤어진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번호를 지우지 않은 건 단순한 변덕과 귀찮음 때문이었다. 소라가 아니었다면 다시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마나미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토도는 저를 원망하던 그 눈동자를 떠올리다가, 제 등허리를 껴안고 있는 마나미를 밀어냈다. 온 몸이 끈적거렸다. 일본의 여름은 역시 가혹했다. 에어컨이 없는 프랑스의 여름보다야 사정이 괜찮다지만, 그래도 특유의 꿉꿉함을 견딜 수 없었다. 샤워를 하고 싶었다.

   숨을 들이켰다. 마나미의 새근거림이 뒷목과 머리카락에 계속 닿고 있었다. 그를 주운 게 제가 아니라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토도는 손을 뻗어 에어컨을 켰다. 경쾌한 시동음이 들렸다. 펜이 움직이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나미가 입은 티셔츠도 땀범벅인 듯 온 몸이 끈적거렸다. 깰 법도 한데 깨질 않았다. 제법 가까운 거리였다. 

   그의 양 팔이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다.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면 잠이 안 온다던 언젠가의 그를 기억했다. 꼭 소라 같네. 라고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강아지는 정을 주면 정을 준 대로 기억하는 천사들이라는 아라키타의 말을 떠올렸다. 이 타이밍에 기억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토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마나미를 밀어냈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밀착해있던 몸이 조금 떨어졌다. 잠결에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았는데도 마나미는 허리를 놓지 않았다. 간간히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악몽을 꾸나? 싶어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몇 년 전에는 익숙했던 풍경이 이제는 숨 막히게 어색했다. 이 낯섦에 익숙해지는 것도 싫었다. 토도는 애써 밀어냈던 모든 것을 다시 제 삶에 이끌어오고 싶지 않았다. 변화를 싫어할만한 나이였다.

   더웠다. 창 밖에서는 매미가 울고 있었다. 그는 등에 붙은 머리카락을 갈무리했다. 한 갈래로 모아 앞으로 내렸다. 그러다가 손목에 머리끈이 걸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머리카락을 높게 올렸다. 허리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을 원을 그리며 베베 꼰다. 목과 등을 간질이지 않도록 최대한 동그랗게 말아서 머리끈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없는 등이 오히려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에 간질거렸다.

   깨울까, 하며 마나미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은 천사 같다. 좀 더 자게 두자 싶어, 토도는 그의 손등을 잡았다. 제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천천히 때어낸다. 삿포로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사라지지 말아요, 라고 했을까. 그와 함께 있음에 새록새록 기억하게 되는 잊은 것들에 토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미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토도는 협탁에 개둔 양말 사이를 더듬었다. 쓰지 않은 콘돔 팩 옆에 마스터키가 있었다. 손님방에는 샤워실이 딸려 있지 않았다. 집 설계를 할 때 그런 세세한 것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욕실은 따로 있다. 넓은 욕조에서 하는 목욕을 좋아했으니까. 몸을 가볍게 씻을만한 샤워실은 안방 안에야 있다. 

   집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토도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너무, 진하게 묻어있는 탓이었다. 결국, 그 때문이었다.




***


   “정말로 갈 거야?” 


   라고 토도는 계속 물었다. 마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미는 거실에 걸려있는 두 대의 로드바이크를 바라보면서 네- 하고 대답했다. 토도의 리들리 옆에 걸려있는 『자신의 자전거』는 묘하게 어색하면서도, 그게 제 자리인 것 같았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비어 있던 자리를 무언가가 채운다는 건. 마나미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히히, 웃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토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좋아해.”

   “처음 하는 거라서.”

   “처음 아니잖아.”

   “지금은 처음인 기분이니까.”


   선수니까 운동신경은 남아있겠죠? 밥 먹고 자전거만 탄 사람들이 선수가 되는 거니까. 마나미는 신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토도는 그렇겠지, 하고 대답했다. 묘하게 맥 빠지는 대답이었다. 마나미는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깨끗이 씻어 말린 빈 물병에 아쿠에리스를 채우고 있었다. 물이 아니야? 라고 묻자 토도는 네가 좋아하던 거, 라고 대답했다.

   심플했다. 토도는 무엇이든 알고 있었다. 뭔가 신 같은 느낌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자 그는 정말로 산신이라고 대답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마나미는 이런 상태의 그가 좋았다.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자신 없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비실비실 삐져나왔다. 착잡한 표정을 하면서 드링크 병을 채우던 토도가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마나미는 카레 그릇을 긁었다. 냠, 하고 마지막 한 입을 먹었다. 이 닦고 옷 갈아입어, 라는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어디로 가요? 그는 물을 마시기 전에 물었다. 토도는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평지를 달려봤자 별 효과가 없을 거라는 말에 마나미는 잘 모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덕을 좋아했나?”

   “언제나 웃으면서 올라갔어.”

   “우리 집 경사도 힘든데요?”

   “이런 말 조금 낯설어.”


   특히 너한테서 들으니까 말야. 토도는 가만 눈을 깜박였다. 마나미는 언덕을 즐거워하면서 올라가는 건 변태 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다가, 내가 그 변태였나? 하고 되물었다. 토도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산을 자전거로 올라가고 그랬어. 하코네에서 달렸으니까. 시즈오카의 산도 마찬가지야. 라고 말하는 토도는 상상 속에 있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회복 중이라 빠르게 달리진 못할 거니까, 가볍게 사이클링만 하자는 그에게 마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 가볍게 물을 틀었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이 닦고 와. 라는 말은 꼭 혼자 있고 싶어. 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려서, 마나미는 네- 하고 괜히 말꼬리를 늘이면서 욕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욕조에 걸터앉아 이를 닦았다. 욕실 옆에 딸린 세면대는 조금 낮아 불편했다. 이런 집이니까 잘 안 팔리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렇게 지었을까를 고민했다. 밑그림을 모르는 채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치카치카 소리가 났다. 꼼꼼하게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전면 거울이 부끄러웠다. 신혼부부 집에나 있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면서 토도의 반팔을 걸쳤다.

   돌고래가 그려져 있는 심플한 티셔츠였다. 트레이닝 복은 조금 다리가 짧았다. 그가 저 보다 키가 한 뼘 정도 작은 탓이었다. 져지를 입지 않고 가지고 나가자 산에는 벌레가 많다는 잔소리가 따라왔다. 토도는 연보라색 티셔츠와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산에서 흰색은 더러워지지 않냐고 묻자, 소속 팀이 계속 흰색 유니폼이어서 익숙하다는 말이 따라왔다. 마나미는 토도 몰래 봤던 사진첩을 떠올렸다.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유니폼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는 토도가 조립했다. 간단하게 정비했다. 반짝반짝하고 하얀 자전거. 마나미는 LOOK의 그립을 쥐었다. 손에 감겨오는 느낌은 묘하게 익숙했다. 토도는 그를 살피다가 자전거 위에 올라섰다. 안장이 높고 상체를 숙여야하는 자전거를 바라보다가, 마나미는 그를 따라 안장에 앉았다. 토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꼼꼼하게 말해주었다.

   출발 할까요? 라고 물었다. 토도는 자전거 위의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만 기다리는 말을 남기고 집 안으로 쪼로로 들어갔다. 벽에 기댄 리들리는 묘하게 불안해보였다. 토도는 어디선가 헬맷을 꺼내 마나미의 머리에 씌웠다. 사이클링이잖아요? 라고 묻자 조용히하고 쓰라는 말이 따라왔다. 과보호해주는구나, 싶어 웃었다. 토도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에게 장갑을 건넸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마실 것. 힘들면 속도를 낮춰 달라 말할 것. 무리하지 말 것. 이상한 위화감이 들면 바로 멈추어 자신을 부를 것. 케이댄스를 무리하게 올리지 말 것.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지금 몸의 상태는 다른 것. 토도는 출발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설교했다. 손가락을 다 접었다, 다시 다 폈을 때쯤에야 토도는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높게 묶었다. 원래 탈 때는 묶어요? 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등에 뭔가 닿는 걸 싫어한다는 토도의 말에, 마나미는 그의 머리카락이 등을 덮는 길이인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말할 틈도 없이 토도는 땅을 박찼다. 마나미는 엉거주춤하게 꼈던 장갑을 바로 잡았다. 그의 것인지 조금 작았다. 손도 발도, 자기보다 조금 작구나, 라고 생각하니 귀여웠다. 마나미는 장갑의 밴드 부분을 조금 널널하게 조절하고 그를 따라갔다.

   기억엔 없어도 몸이 알고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지. 중심을 잡는 건 수월했다. 토도는 마나미의 앞에서 달렸다.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지면을 차는 타이어의 감촉이 좋았다. 더운 볕 아래.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달림으로서 불어오는 바람의 촉감이 좋았다. 볼을 간질이는 그 순간들에 순간 벅차올랐다.

   순간 축이 흔들렸다. 오르막의 초입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폐부로 숨이 쓸데없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앞서 달리는 토도는 우아했다. 쓸모없는 동작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모르지만’ 알 수 있었다. 그의 상체는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쓸모 없이 힘을 빼지도 않았다. 지금의 자신처럼 헐떡이지도 않는다. 가볍고 우아하게, 중력에 저항한다.

   그의 움직임은 사실, 저항이라기보다는 순응에 가까웠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자신이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중력 쪽이 고개를 숙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는 쭉 뻗어 올라갔다가, 순간 감속했다. 심장이 뛰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심박수가 올라갔음을 자전거에 달린 작은 기계가 알려주었다. 토도는 뒤를 돌았다. 무리하지 마, 라고 말했다. 헬맷을 쓰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팔랑팔랑 움직였다.

   홀릴 것만 같았다. 온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절대적인 감각이었다. 그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본다. 축을 고정시킨다.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그의 자전거에서는 쓸데없는 소리가 나질 않는다. 자신의 자전거에서 나는 체인 소리나 주행에 섞이게 되는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반할 것 같아, 라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들렸을까? 싶지만 삐걱이는 로드 덕에 닿진 않은 것 같았다.

   파란 하늘, 앞서 가는 하얀 트레이닝 복의 선배.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풍경이었다. 바람이 부니까 가까이 붙어, 토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마나미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바퀴와 바퀴가 닿을 때 까지, 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잘 하는걸, 이라고 칭찬하는 그의 목소리는 소나기 전 물 먹은 하늘마냥 느껴졌다. 

   그의 등 뒤로 들어가자 바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보다 달리기 편했다. 원래도 이런 식으로 산을 타나요? 라고 묻자 그는 힘들까봐 끌어주고 있다고 대답했다. 낮은 경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토도는 몇 번이나 속도를 줄였다. 그를 따라하면 좀 더 나을까 싶어 폼을 살폈다. 

   토도는 상체를 고정하고 달린다. 소리 없이 달리네요, 라고 말하자 ‘슬리핑 클라임’이 자신의 전매특허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세상의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토도 진파치만의 것. 시그니쳐. 라는 말에 가슴이 술렁거렸다.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 또한 그런 게 있었을까요, 라고 묻자 토도는 잠시 고민하다가 ‘날개’를 꺼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감각적이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이 새가 될 수는 없으니까 비유적인 표현이죠? 라고 묻자 그는 그래, 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질 때, 바람이 불 때는 순간적으로 가속하면서 날개가 달린 듯 날아간다는 말을 했다. 꿈꾸듯, 홀린 듯, 아니면 반한 것처럼 말하는 토도의 표정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지 감이 안왔다. 지금의 마나미는 토도의 옆에서 달리는 것조차 벅찼다. 가벼운 사이클링이라지만 사실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토도 나름대로 완급을 조절하는 것 같았지만 숨을 고르는 것부터 알 수 없었다. 의식할수록 호흡이 흐트러졌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의식하게 된다. 몸에게 맡기면 될 것을 불완전한 머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인식하고 있으나 고칠 수 없었다. 마나미는 형편없이 삐걱거렸다. 코스를 잡는 것도 토도를 보고 따라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등을 보는 건 ‘익숙’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았다. 기시감이 들었다. 백지 같은 상태임에도 그를 갈망하게 된다. 흔들리는 머리카락마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미는 코로 숨을 들이키다 입을 벌렸다. 산소가 부족했다.

   댄싱으로 단숨에 올라가자, 라는 부분에서 엉덩이를 드는 토도의 자세를 보다가, 반 박자 늦게 올라갔다. 도무지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텐션이 잘못 조율 된 인형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해요, 라고 말하자 토도는 뒤를 돌았다. 그는 바람을 막아주던 것을 그만 두고 마나미의 옆에 섰다. 


   “따라하고 싶어?”


   마나미는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토도는 그럼? 하고 물었다.


   “따라가고 싶어요.”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먼 정상을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페달을 바라보았다. 마나미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상에는 즐거운 게 많이 있을까요? 라며 호흡했다. 집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언덕은 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어리광을 부려도 경사는 낮아지지 않는다.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이 이 곳을 좋아했을 거라 확신했다.

   마나미는 고개를 돌렸다. 토도의 표정은 멜랑콜리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무언가 어려운 일을 앞둔 느낌이었다. 토도의 입술은 소리 없이 달싹였다. 이미 올라온 언덕길이 그의 너머에 보였다. 파란 하늘이 깔려있는 그 풍경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는 한없이 하얀 구름이 넘실거리는 여름을 바라보았다. 토도까지, 포함한 그 풍경이 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 끝에 들어오는 산소가 울컥였다.

   토도는 마나미의 앞을 달렸다.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여주기 싫은 걸까, 생각했다. 손을 뻗어서라도 닿고 싶었다. 움켜쥐고 싶었다. 정상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그의 속도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감정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여름의 열기에 체력이 더 빠르게 증발하는 듯 했다. 산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처럼 아득했다.

   여름, 그래. 여름이었다. 마나미는 토도의 가는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핸들을 꼬옥 잡고 있었다. 여전히 흔들리지 않은 폼이었다. 그는 그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라고 묻자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마나미에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들리지 않아, 네? 하고 되물었다. 그제야 그는 뒤를 돌았다. 환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허나 그것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토도는 평소처럼 크고, 또렷하게 잘 들리는 목소리로 마나미에게, 


   “자유롭게 달려. 마나미.”


   라고 말했다. 순간 심장이 지잉, 하고 울렸다. 덜컥이는 것을 애써 참았다. 마나미는 눈을 깜빡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요? 라고 묻자 토도는 그런 형식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직 밟지 못한 언덕이 보였다. 토도는 커브를 돌았다. 완만한 경사를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나를 앞지르고 싶으면, 정상을 이미지 해. 네가 상상하는 건 그 풍경만으로 족하다! 라는 목소리가 크게 뻗었다.

   정상으로 가는 너는 언제나 자유로워. 팀이든, 기억이든 너를 붙잡는 것은 모두 잊어버려도 돼. 순백의, 아무도 밟지 않은 그것을 네 것으로 하려는 욕망으로 페달을 돌려. 기어를 무겁게 해도 좋아. 가볍게 하는 법은 마나미, 네 게 아니란다. 내가 말하는 방식조차 무시해도 좋아. 하지만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너는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토도의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밟는다. 네! 하고 힘차게 대답하자 토도는 속력을 올렸다.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듯 도망가는 그를 바라본다. 아무도 도달하지 않은 산 정상. 마나미는 그 풍경을 알고 있었다. 도망가는 그의 등 또한 여러 번 마주했던 것이다. 어딘가의 울컥임이 번져왔다. 토도의 냉동실에서 완전히 얼어버린 맥주 캔들을 봤을 때처럼.

   스며드는 감정은 아릿하다. 무딘 칼처럼 자신을 베고 넘어간다. 이런 울컥거림, 억울함. 마나미는 이런 감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페달을 밟았다. 균형을 잡으면서 장갑을 손에서 뺐다. 땀이 찬 맨손으로 잡는 핸들의 감촉을 느낀다. 잠그고 있던 트레이닝 복의 지퍼를 풀었다. 이래야 할 것 같았다. 옷 자락이 팔랑팔랑, 움직였다. 커브를 돌아 도망가버린 그를 상상한다. 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잡아서, 움켜쥐고 손에 가두고 싶을 만큼. 마나미는 ‘자유로움’을 상상할 때 마다, 앞으로. 지금 이 순간의 그를 회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토도는 뒤를 돌았다. 전력으로 와라! 산가쿠! 하고 외치는 목소리는 어쩐지 울음이나, 포효를 닮아 있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나미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은 전력으로 페달을 밟아 돌리는 것뿐이었다.

   목울대가 일렁였다. 그의 폼은 아름답다.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다. 하지만 왜 뒷모습을 볼 때 마다 울음이 나는 지 알 수 없었다. 토도는 뒤를 돌지 않았다. 정상을 향해 전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지기 싫다는 듯 구는 그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실력 차이는 절망적이다. 하지만, 자신의 앞을 달리고 싶다는 듯 토도는 빠르게 달려갔다. 아마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도 이런 식으로 그를 쫓아갔을 것이다.


   “항상 내 앞을 달리는 사람.”


   정상까지 뻗은 고갯길에서 토도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마나미는 다리를 움직였다. 땅을 박찼다. 그의 폼을 머리에서 지운다. 몸이 하고 싶은데로 나눈다. 신기하게도 속력이 붙는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오르막을 전력질주한다. 아마 토도는, 자신이 전력으로 다가가도 모두 받아줄 수 있는 남자일 것이다. 반할 것 같아. 그는 이미 반했음에도 그 말을 속삭인다. 토도에게 닿지 않은 말이 땀처럼 여름에 스몄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나미는 자신이 그를 사랑했음을 확신한다. 울음이 났다. 소리를 죽였다. 땀을 닦는 척 얼굴을 닦았다. 그의 깔끔한 뒷모습이,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한없이 파란 하늘을 향해서 달려가는 토도 진파치가, 하늘을 덮고 있는 하얀 구름이, 제게서 나는 땀 냄새가. 속도가 붙을 때 마다 들리는 바람 소리가. 간간히 입 속으로 들어오는 땀이 내는 짠 맛이.

   모두 여름 같았다. 그와 자신의 여름. 작은 레이스. 마나미는 끊임없이 페달을 밟았다. 날개를 달고 한 번에 가속하는 감각은 알 수 없었다. 심장은 펌프질을 하고 혈액을 온 몸으로 돌린다. 제게로 도주하듯 정상을 밟는 그를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모습이. 그 모습이 억울해 페달을 돌렸다. 일방적인 술래잡기 같은 레이스였다. 억울했다. 가슴에 치받쳐 오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해요, 라고 말하면 도망가겠지 그 억울함이 마음에 진하게 담겨 있었다. 이런 그를 어떻게 움켜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이 없어 반쪽짜리인 자신이 그를 옭아매는 중력이 될 수 있을까. 억울함에 명치 쪽에 고였다. 핸들을 꽉 잡았다. 정상에서 기다리는 토도를 이미지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다리가 움직였다. 아직 밟을 수 있다. 마나미는 안장에서 일어났다. 갈증이 났다. 어서 따라가고 싶었다.

   갈급, 정상에 대한 갈망. 욕망. 마나미는 그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었다. 마나미는 그 안으로 미끄려 들어갔다. 넘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전거를 움직였다. 제가 길들여둔 것은 제 버릇을 기억하고 있는 지 얼추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하지만 벌려진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그는 정상을 스쳐 지나갔다. 토도는 기다리지 않았는지 저 멀리를 달려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울 수 있어서. 그에게 우는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다. 눈을 감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게 느껴졌다. 코스를 효율적으로 밟으면 빨라질 수 있을까. 날개라는 걸 꺼내면 닿을 수 있을까. 사이클링이라고 했잖아요- 라면서 억울한 듯 말하면 곁에 있어줄까. 마나미는 토도가 밟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밟았다. 내리막에서 붙는 가속도가 무서웠다. 하지만 앞에 그가 달리고 있다는 것으로도 무섭지 않았다.

   비오는 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눈을 떴던 자신을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의 『마나미 산가쿠』의 시작. 버려져 있는 자신. 비탈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찢어질 것처럼 아픈 온 몸. 그런 부정적인 기억들에 토도를 덧씌웠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침을 삼키자 마른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럼에도 다리를 멈추지 않는 것은 제 앞을 달리고 있는 토도 때문이었다. 그를 욕망한다. 동시에 사랑한다.

   멀리 그의 모습이 보인다. 눈물이 나왔다. 익숙하게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펼쳐지는 익숙한 파랑. 벌써 몇 해나 봐왔을 이 계절. 겪어왔던 모든 계절 중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득하다고, 혹은, 아득할 것이라도 마나미는 확신했다. 숨을 들이켰다. 멀리, 토도가 자전거를 멈추고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손을 흔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자전거에서 내리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혼자만의 승부는 이제 끝났을까. 왜 계속 앞으로 달리고 싶었을까. 물어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게 많았다. 먼 거리라 다행이었다. 서로의 표정이 보이지 않은 먼 거리. 꿉꿉하고 습기찬 일본의 여름. 크게 우는 산벌레와 눈물의 짠 맛. 꼭 쥐고 놓지 않는 자전거의 핸들.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푸른 하늘과 멀리서 저를 기다리는 토도. 마나미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어째 울음이 멎질 않았다.

   이 여름에 영원히, 갇히고 싶었다.





***


   미야하라는 초조하게, 패널을 바라보았다. 숫자가 통 늘어나질 않았다. 곧 있으면 응대 시간이 끝난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다가 숨을 내쉬었다. 묘하게 불안했다. 항상 같은 곳에 두던 마나미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먼지가 쌓일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게 없었다. 그녀는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얗게 질린 손 끝을 의식하다가 안경을 올려 썼다.

   백칠십 번, 을 연신 부른다. 대답이 없자 띵동, 소리를 다시 한 번 울린다. 백칠십일 번, 백칠십이 번이 순식간에 들어간다. 그녀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접수대로 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진정할 수 가 없었다. 마나미의 자전거였다. 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숨을 헛으로 들이키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라, 미야하라 씨 아니세요?”


   목소리가 들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친해진 간호사였다. 무슨 일이에요? 어디 아파요? 라고 물어오는 그녀에게, 자전거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엇, 하고 망설였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불안감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 질문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연락이 안 닿았던 모양이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거, 며칠 전에 누가 찾아갔어요.”

   “네?”


    미야하라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순간적으로 입을 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송합니다, 하고 주변에 사과를 한 다음 제 앞의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띵동, 하고 벨이 울렸다. 제 번호인데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간호사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앉았다. 다시 띵동, 하고 소리가 울렸다. 뒤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몸을 움직였다.

   마나미의 자전거였다. 마나미가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금액이었다. 본인이 왔었나요? 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인이 찾아갔어요. 수납도 완료했고, 자전거를 받더니 익숙하게 해체해서 들고 가던데요.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다. 미야하라는 숨을 내쉬었다. 목이 바짝바짝 탔다.


   “누군지 기억 하시나요?”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안 말 해줬던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은?”

   “예쁜 사람이었는데… 머리카락이 긴 남자였어요.”


   순간 머리에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미야하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활기 찬 사람이었나요? 잘 웃는 다던가. 간호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먼곳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수가 적고, 처연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라는 감각적인 설명이었다. 그녀는 토도를 떠올렸다. 그는 태양 같이 활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겨울의 그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름 그늘처럼 싸한 인상이었다. 애초에 입을 다물면 싸늘한 인상이었다. 그가, 찾아갔을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데. 미야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연락이 어디에선가 꼬인 모양이라면서 웃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가끔씩 생기더란 말에 미야하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꾸만 입꼬리가 굳어갔다.

   숨이 막혔다. 천천히 내쉬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는 간호사를 배웅했다. 손을 흔들고 나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변제를 완료 하고 담보까지 찾아갈 정도면 마나미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머리가 돌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에 접수처로 달려갔다. 아까 배웅했던 그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미야하라는 좀 더 알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자꾸만 커졌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에게 그녀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금액을 변제할 때는 현금을 쓰고 영수증을 받을 때는 마나미 산가쿠의 이름을 적었다고 했다. 차용증을 볼 수 있느냐 했더니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달필이었나요? 미야하라는 고등학교 시절, 그의 팬클럽이 중얼거리던 혼잣말을 기억해내어 물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도 좋은 편이었어요. 스타일이 좋은 미인이었다는 증언에 미야하라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몸을 돌렸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왔다. 비탈을 걸어 내려갔다. 그는 그 겨울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토도 진파치. 마나미의 옛 연인. 미야하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마나미를 한참이나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 들어왔단 소식은 들었다. 개를 길렀던 모양이었다. 그걸 입양 보내느라 자신에게까지 연락을 했었다. 미야하라는 핸드폰을 열었다. 토도 진파치와의 대화 기록은 심플했다. 개를 기르겠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게 나름의 신호였던 걸까? 생각하다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건널목에 다다랐다. 기차가 지나가는 지 차단기가 내려와 있었다.

   사람 사이의 감정에 타인이 껴서 왈가왈부 할 수 없지만, 그에게 마나미가 가 있다면 찾아오고 싶었다. 마나미를 힘들 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아파하는 것은 어릴 적 말고는 보지 못했다. 그 이후로 마나미는 많이 앓았다.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못할 정도로. 토도 선배가 밉다고 말하면서 많이 울었다. 울음으로 지새던 밤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했던 사람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이 마나미를 숨기고 있다면, 그 저의를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되찾고 나서의 마나미가 그를 어떻게 판단할지 혼란스러워 할 것 같았다.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것 같았다.

   산매미가 울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녀는 핸드폰을 열었다. 토도 진파치와의 메시지 창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넣었다. 애먼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건 싫었다. 하지만, 짚이는 사람이 그 밖에 없었다. 미야하라는 메시지를 몇 번이고 살폈다. 차단기가 올라갔다. 신호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는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문장을 다듬고 가다듬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그녀는 심플한 메시지 하나를 보낼 수 있었다.

   또 다시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술렁이는 마음이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건널목을 바라보았다. 계속 탐정 놀이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데리고 있다면 연락 정도는 해 주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보낸 메시지를 취소하지 않았다. 여름 하늘을 뒤덮은 노을이 점점 밤하늘에 덮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안경을 올려 썼다.


   『혹시 산가쿠가, 그 집에 있나요?』


   답장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는 건널목의 빨간 신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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