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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토도] 그 해 여름 소년 12018. 10. 28. 13:17
프로 로드레이서 마나미 x 프로 로드레이서 토도 연령, 미래 조작, 기억상실 요소 있음. "빗물이 야트막하게 고이는 처마가 있는 집" *** 임보하던 강아지를 새 주인 손에 들려 보냈다. 그제 저녁의 일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옆을 더듬었다. 넓은 침대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오롯한 일인분이었다. 그제야 그는 제 침대에 올라오던 버릇없던 것의 부재를 깨달았다. 손가락으로 시트를 더듬었다. 그러다, 토도는 머리띠를 하지 않아 내려온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하나 없는 집에 담기기엔 큰 소리였으나,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늦여름 마냥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옆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제가 닿지 않았던 침대의 시트는 냉랭했다. 토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손에 닿은 협탁의 시계는 네시 반을 나타내고 있었다. 덜커덕 거리며 깨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어제까지 집에 있던 녀석은 언제나 이 시간에 산책을 가자 조르곤 했다. 그는 저보다는 작고, 저보다는 따듯했던 온기를 떠올리며 시트를 쓰다듬었다. 한 존재만큼의 외로움이 손 끝에 닿았다. 큰 걸, 사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결과는 나중에야 나타난다. 부재 또한 마찬가지다. 있을 때는 모르나 빈자리일 때는 안다. 살 때는 얼마나 넓은지 몰랐던 침대 같은 일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는 야광으로 반짝이는 시계마저 눈부시다 느꼈다. 토도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트 위에는 저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일인분의 존재감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이불을 더듬었다. 그제 꺼냈던 도톰한 가을 이불에는 그 애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이별의 순간은 짧지만 상실은 깊게 온다. 곱씹게 되는 것은 그만큼 사랑했다는 증거임을 알면서도, 그는 괜히 외로워했다. 토도는 무릎을 당겨 앉았다. 오른쪽 발목의 복숭아뼈를 만지작거리며, 그 애를 반추했다. '소라' 라는 이름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였고, 수의사는 1년 8개월 정도의 나이라고 했다. 유기견이었고, 주인을 찾을 수도 없었다. 커다란 상자에 들어 있었고, 상자에는 '소라' 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어린애 글씨였다. 이사를 가면서 버린 모양이었다. 그 개는 저가 임시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아니면 버려졌다는 현실감조차 없는지, 거리감이 없었다. 유기 된 것을 주웠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청소기를 밀 때조차 꼬리를 살랑거리며 따라왔고, 침대에 누우면 옆에 누워 제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토도가 자전거를 탈 수 없음을 아는 지, 러닝이라도 하자는 듯 새벽에 깨서 산책을 가자 졸랐다. 하네스를 채우고 동네를 가만히 돌았다. 개는 꼬리를 흔들며 거리의 냄새를 맡았다. 종종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주워와 토도의 발치에 놓고 가만히 기다렸다. 칭찬을 바라는 듯 가만히 헥헥거리고 있는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토도가 그의 머리를 가만히 톡톡, 두드리고 귀를 긁으며 쓰다듬으면 기쁘다는 듯 움직였다. 병원 밖에 매여 있어도 불평 하나 하지 않고 기다렸다.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한 달 동안을 온갖 색체로 물들였다. 사료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밥을 탐낸다. 일차원적이고 버릇없는 행동들은 그것이 ‘그 애’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다. 제 품 안에 들인 모든 건 엄하게 길러야지 하면서도 막상 제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누그러지게 되는 것이었다. 잠을 잘 때는 꼭 제 옆에서 잤다. 밤이 두려운 듯 굴었다. 털있는 것을 침대에 들이는 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제 옆자리를 비우고 그 온기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감았다. 락차 이후 찾아왔던 모든 악몽들을 물어 숨기는지, 꿈 없이 편히 잘 수 있었다. 옆자리를 다시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는 밤이 유독 길었다. 며칠 분의 악몽 까지 미리 물어 갔었는지, 꿈은 꾸지 않았다. 익숙해져야 하면서도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도쿄의 이층 멘션은 집이라기보다는 숙소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후쿠토미와 같이 쓰는 팀 숙소가 훨씬 제 집 같았다. 토도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반절만 차가운 시트에 웃음이 났다. 소라는 곁에 없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후쿠에게 재활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가벼운 염좌에 인대가 늘어났을 뿐이야, 라고 말하면서 토도는 제 발목을 더듬었다. 자리에 누웠다. 높은 천장에는 어설프게 붙은 야광별들이 빛을 잃은 채 반짝였다. 토도는 다시 옆으로 돌았다. 휴가를 받지 말 걸 그랬다며 혀를 찼다. 앞으로의 한달을 혼자 어떻게 지내야 할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소라를 좀 더 늦게 보낼까 싶었지만 이별의 때를 놓치면 어설프게 익은 첫사랑 꼴이 되고 만다. 잘 되었어, 라고 다시 제게 말하면서도 그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창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렸다. 짙고 깊은 비였다. 그는 바디 필로우 용으로 긴 베개를 사야지, 하다가 엊저녁에 온 전화를 떠올렸다. 갈곳없는 밤에는 상념만 늘어가곤 했다. 전화를 건 건 아라키타였다. 고맙게도 ‘임시 보호’하던 ‘제’ 개를 쭉 기르겠다고 나선 유일한 사람이었다. 잘 지내? 라고 물었다. 아라키타는 묘하게 멋쩍어 하며 제 근황을 말했다. 그것 또한 물어볼 예정이었지만 조금 나중에 듣고 싶었던 말이라, 아니 아라키타여. 너 말고 소라. 라고 말했다. 아라키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조금의 틈을 두고선, 개새끼가 사람새끼보다 우선인 게 개를 기르긴 길렀나보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개가 너무 버릇이 없는 게 니가 잘못 길렀기 때문인 걸 굳이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다면서, 일 년 팔개월령 추정의 리트리버가 얼마나 그의 집에서 날뛰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새벽녘부터 깨서 하네스를 물고 와 산책을 가자고 졸랐다며, 그는 네 시 반에 산책을 가는 또라이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토도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웃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새벽 산책을 좋아하거든. 아라키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공백이 나름 어색해, 토도는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소라는 프리스비를 잘해. 사료는 보내준 걸 먹으면 잘 먹을 거다. 하지만 도미 오챠즈케를 먹을 때는 언제나 옆에서 꼬리를 흔들었지. 그래서 가끔씩 생식을 줬어. 무항생제 닭이랑 닭 내장, 캥거루 순살이랑, 채소 퓨레를 넣었단다. 토도의 목소리는 가만하고, 조용했다. 아라키타는 혀를 찼다. 오래 만나온 지인은 제 행간이 어쩐지 늘어진다는 것을 눈치챈 듯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도 냄새가 나나, 라고 고민하면서 토도는 잠시 제 둥근 발가락을 바라보았다. 아라키타는 음, 그래. 라고 먼저 대답했다. 나이를 먹어 그도 누그러진 부분이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멍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돼'와 '멈춰'를 가리키는 듯, 한참 개에게 하는 소리와 칭찬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아라키타여, 하고 부르니 아라키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선 어쩐지 널 좋아하더라. 라고 대답했다. 모든 개는 사람을 사랑한다. 는 명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 그런 이상한 문장을 당연하다고 느낀다. 토도는 한참 있다가, 그 애를 위해 시간을 썼으니까. 라고 대답했다. 아라키타는 이번 시즌 해외 레이스에 안 간 게 이거 때문이냐고 질문했다. 신변잡기 같은 질문이었다. 아라키타의 발치에서 빙글빙글 꼬리를 잡듯 돌아다닐 리트리버를 상상하며 토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두 달 전에 그 리트리버를 주워 왔을 때에는 나 말고는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다, 라고 말하자 아라키타는 다시 혀를 찼다. 전화 사이에서 긴 공백이 있었다. 니가 없어서 후쿠 팀이 졌잖아, 라고 애써 말하는 아라키타의 목소리를 들으며 토도는 애매하게 웃었다. 토도는 발목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한참을 할 말이 없었다. 평소에는 ‘그럼, 이 토도 진파치는 산에서, 지지 않으니까.’ 혹은 ‘신는 이 나에게 세 가지를 주셨으니까’ 로 이어져야 할 말이 돌아오지 않으니 아라키타는 괜히 투덜거렸다. 개 진짜 보내도 되냐, 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설프게 '아예 그만두는 건 아니지?'라고 질문했다. 토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스를 쉬었던 건 내가 저저번 레이스에서 부상을 입었고, 그걸 좀 치료해야 했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하면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꼬았다. 그만뒀다면 소라는 내가 데리고 있었을 거다, 라는 부연설명을 하고 나서야 아라키타는 납득한 듯, 후쿠를 계속 이기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제 자전거를 탄 모습보다, 정장이 어울리는 그를 반추하며 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키타는 오래 쉬는 느낌이 어때, 라고 물었다. 토도는 어색해서 휴가를 반납하고 돌아갈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탈 난다는 말에 토도는 입술을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어리광은 한 번 뿐이지.” ― 아직 젊거든? “그래도.” 외롭냐? 응. 그럼 기르지. 싫어. 토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선수 생명은 짧으니까 더 멈춰설 수 없어. 곧 나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고, 집은 다시 비워질 거야. 나는 다시 후쿠의 옆방으로 돌아갈 거고, 빈 집에 펫시터를 고용다고 해도 일시적이지. 내가 소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애의 시간을 함부로 뺏을 수는 없는 거야. 전력으로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타깝잖아. 애완동물은 가까이 놓고 길러야 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잉어조차도 밥 주는 사람의 목소리는 기억하는데 개는 오죽하겠니, 아라키타여. 토도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선, 천천히 거실을 맴돌았다. 제 발걸음 끝을 따라오는 것이 없었다. 토도는 또다시 공백을 깨달았다. 그는 청소기를 꺼냈다. 카펫에 돌아다니던 황금색 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구석에 큰 상자가 남아 있는 걸 깨달았다. 애착 상자를 주는 걸 까먹었네, 라고 문득 말하자 수화기 너머의 그는 개집 샀으니까 필요 없어, 라고 대답했다. 상자에서 졸업할 때가 됐어. 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목소리는 상냥했다. 그의 옆에서 헥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라였다. 토도는 청소기 선을 뽑아 플러그에 꽂았다. 그에게 몇 가지, 소라의 버릇들과 소라와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토도는 웃었다. 새 이름은 뭐야? 라고 묻자 아라키타는 여기서도 소라야, 라고 대답했다. 그 애는 파란 하늘을 좋아해. 토도는 그렇게 말하면서 카펫에 누웠다. 개샴푸 냄새가 났다. 빈자리에 이렇게 진하게 남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손에 잡히는 털을 훔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라키타는 종종 사진을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고마워, 라고 대답하자 바로 전화가 끊겼다. 상냥했다. 토도는 청소기를 밀었다. 빈자리를 구석구석 밀고, 거실에 딸린, 낮은 복층을 청소했다. 계단 다섯 개로 올라갈 수 있는 곳에는 햇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개가 좋아하던 곳이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햇살에 날리는 먼지는 별빛 같았다. 당연히 있어야 것이 없다는 것은 조금 충격이라, 청소기를 내려놓고 난간에 등을 기댔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집에서 그는 날짜를 셈했다. 팀에서 제게 쉬어도 된다 허락한 날은 한 달 가량이 남았다. 이렇게 길게, 휴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멈춘다는 것은 곧, 성장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았다. 멈춘다면 도태되는 잔혹한 세계. 언제나 강하지 않으면 제 자리를 쉽게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만다. 시즌 오프 때도 실내에서 롤러를 탔다. 손이 곱고 몸이 시리다고 자전거를 놓는 건 고등학생 때나 가능한 어리광이었다. 천천히 뜬 눈은 일렁이는 오후의 빛무리를 담고 있었다. 괜히 뻗은 다리가 외로워져 그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멍, 멍, 하고 짖는 소리가 없었다. 그는 그제야 제가, 제 생각보다 그 개를 사랑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공백에 빌어 토도는 『애매한 상냥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는 언제나 헤어질 때, 이 말을 듣곤 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사람이 처음 선물한 말이었다. 토도 진파치의 애인이라면 하나쯤 품고 있어야 할 말이기도 했다. 가만히 몸을 웅크렸다. 목 뒤에 닿을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강아지는 말을 못해 다행이었다. 이번 헤어짐에는 ‘너는 참 애매하게 상냥해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유일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래된 기억은 예리하지 않다. 날이 무딘 칼에는 찔려도 아프지 않다. 다만, 가끔씩 종이에 손을 베이는 것처럼 한 줄로 된 상처를 냈다. 거창하게 피가 나오진 않지만 물이 닿으면 쓰라릴 정도의 흔적이었다. 언젠가부터 전력을 다해 사랑하는 일에 주저하게 되었다. 제 호의와 보답이 행한 의도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고등학교의 팬과 사회에 다온 다음의 팬은 다르다. 호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 당연한 룰을 몰랐을 때의 사랑은 모두 ‘애매한 상냥함’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 중에서도 심장을 저미는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비가 온 후 뿌리를 내리는 잡초처럼 짙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세려면 두 손을 다 사용해야 했다. 토도는 저와 한 달을 같이 있었던 강아지가 좋아했던, 애착 상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 안에 담길 것은 하루의 햇살과 하루의 구름. 혹은 하루의 날씨 밖에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무심코 양말을 찾으려다가, 산책이 아니란 걸 깨닫고 밖으로 나갔다. 큰 상자를 전봇대 아래에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하게 된다. 온기가 남는 자리란 무릇 그러했다. 그는 소라가 담겨 있던 상자가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상자를 생각할 때는 눈물 자국이 나 있는 강아지가 웅크려 있던 것과, 이로 과격하게 뜯은 사료자국과 말라비틀어진 물자국만 남아 있는 물그릇의 광경과, 제가 사랑했던 ‘소라’가 그 안에 들어가서 꼬리를 흔들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에, 이제야 알아챈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저는 애매하게 상냥했을까. 토도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기를까, 하고 다시 생각했지만 기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건 토도였다. 찬찬히 생각하고 고민해도, 그는 그 강아지에게 좋은 주인이 되지 못했다. 소속되어 있는 선수단 숙소에서는 애완동물을 기를 수 없었다. 기른다고 해도 후쿠토미의 거북이나, 햄스터 따위의 작은 동물이었다. 그랬기에 발견하자마자 저가 알고 있는 하코네 학원의 모든 동료들과, 일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집 앞에 강아지가 유기되어 있었습니다. 입양에 필요한 물건을 지원해드립니다. 사정이 괜찮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몇 통이나 되는지 모르는 메시지들을 보냈다. 같은 팀인 후쿠토미와, 집에서 예전에 강아지를 길렀다던 아라키타에게도, 본인은 토끼가 좋다지만 동생이 강아지를 좋아한다던 신카이에게도, 언젠가 잡지 인터뷰를 할 때 인연이 있었던 킨조에게도. 영국에 가 있지만 맘이 약해서 도와줄 것 같은 마키시마에게도 메일을 전송했다. 잡지 인터뷰를 했던 기자들과, 고등학교 때부터 제 팬클럽 관리를 맡고 있었던 친구에게도, 얼굴만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모두에게. 당장 그 개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꼬질꼬질하기 때문일까 생각하며 집 안에 들였다. 다리 인대 부상 때문에 받은 휴가는 두 달이었다. 그 안에 찾아주면 되지, 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 개 짖는 소리로 가득 찬 것은 이 주 만의 일이었다. 시간을 쏟고 사랑했다. 되돌아오는 호의는 언제나 두근거릴 만큼 일직선이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게 좋았다. 한 번 좋아했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나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그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이제는 아라키타 야스토모의 소라였다. 토도 진파치의 소라가 아니라. 개 하나 가지고 유난이지,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제 뒤를 따라오지 않는 그 애에게 서운하고,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한참을 복층에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층과, 소라가 이층에서 제일, 좋아하던 루프탑을 치웠다. 개털을 치우고 장난감을 치워 한 곳에다 모았다. 가져다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야속하게도 하늘은 새파란 파랑이었다. 입술을 빼쭉이다가 그는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거실의 얕은 복층으로 올라갔다. 사랑의 기억이 가장 진하게 남는 자리에 있고 싶었다.
내내 그리워하면서 보낸 어제를 떠올리다가 토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술렁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레이스 팀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고등학생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시절이니 간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토도는 거실로 나갔다. 소라 때문에 높게 걸어둔 리들리를 봤다. 달리고 싶었으나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인대가 완전히 고쳐지기에는 한 달 정도가 더 걸린다. 오늘은 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날이다. 애매한 상냥함, 이라는 단어는 계속 그에게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속이 답답했다. 그는 거실로 나갔다.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는 삐꼭거리는 장난감들을 모아둔 상자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라키타에게 그 강아지가 천둥을 무서워한다는 걸 전달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연락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토도는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선수단 생활을 하는 지금도 마음이 술렁이면 페달을 돌렸다. 그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강아지를 위해 사용한 한 달에 대해 떠올렸다. 대학교 일학년 때, 그를 위해 한 달이라도 냈으면 지금 이렇게 오지 않았을까, 라고 실패한 첫 연애를 반추했다.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난 다음에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첫사랑이었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던 낡은 글귀를 떠올리다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에 커피잔 수면이 애매하게 술렁였다. 울컥, 하고 울음이 밀려올 것 같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늦여름처럼 내리는 비가, 그 강아지의 애착상자를 적시고 있었다. 젖어서 망가지는 상자를 바라보다가 토도는 다시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나미, 라고 중얼거리다가 입술을 막았다. 커피를 들이켰다. 반 정도를 한꺼번에 들이키고 나니 심장이 덜커덕거리면서 뛰었다. 토도 선배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서. 애매하게 상냥해요, 라고 말 하던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리고 스물의 소년을 떠올리다가 그의 새파란 웃음을 떠올렸다. 그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언제나 이 기억이 떠올릴 때면 심장이 저며지는 느낌이 났다. 상처 받기에는 이제 늦었다. 메말라버려 부분밖에 떠오르지 않은 기억에 메마르지 않은 감정이 계속 울컥였다. 억울했다. 저만 멈춰 있었다. 마른세수를 했다. 끝없이 아래로 수렴하듯, 고개를 숙인 파랑을 떠올리다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상자를 꺼내놓지 말걸 그랬다. 잊은 것도 없는데 그는 홀린 듯 밖으로 나섰다. 사랑했다. 환하게 웃는 리트리버의 모습이 그가 웃는 모습이랑 애매하게 겹쳤다. 구질구질한 미련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애매한 미련. 가을의 초입에서 늦여름처럼 거세게 내리는 비가 토도의 온 몸을 적셨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정원에서 가로등까지. 몇 미터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일 내놓을 걸, 하고 생각하면서 달려갔다. 이제 그게 필요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는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이마 너머로 넘겼다. 괜히 울음이 났다. 멋없는 광경이었다. 집에 남은 흔적 중, 가장 사랑한 자리였다. 물을 먹은 슬리퍼가 그의 발에 상처를 냈다. 모든 부드러운 것들은 모두 애매한 날카로움을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상자는 형편없이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어린아이 글씨가 적힌 상자 귀퉁이가 무너져 있는게 보였다. 토도는 가만 움직이다가,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여즉 켜져 있는 가로등이 고인 빗물에 담겨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는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누워 있었다. 소라! 하고 소리쳤다.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는 상자 쪽으로 몸을 숙였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젖어버린 상자가 형편없이 아래로 흩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때 토도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사람임을 깨달았다. 놀라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잊은 적 없는 얼굴이기도 했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토도는 눈을 깜빡였다. 아직 동이 틀 수 없는 시간에 왜, 라고 물었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죽은 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는 소라를 처음 주운 날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꿈 같기만 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조금만 더 정신이 없었더라면,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 착각했을 것이었다. 토도는 손을 뻗었다. 가로등의 주황 불빛을 머금은 파랑색 머리카락을 보다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코끝이 찡했다. 감정이 울컥였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로 누워 있었다. 잠이 든 듯 했다. 토도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비를 맞고 있었다. 걸쳤던 가디건이 물을 먹어 양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 그는 그 자는 모습 또한 알고 있었다. 수없이도 많은 밤에 떠올렸던 사람이었다. 마나미, 하고 이름을 부르며 쭈그려 앉았다. 아끼던 베이지색 가디건에 흙탕물이 들었다. 마나미, 라고 불렀다. 어깨를 흔들었다. 의식이 없었다. 황급히 몸을 숙였다. 심장소리를 들었다. 뛰고 있었다. 병원? 경찰?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 머리가 하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의 몸을 일으켰다. 의식이 없는 지, 축 쳐져 있는 몸이 안쓰러웠다. 그를 상자 안에서 꺼내다 상자가 찢어졌다. 토도는 그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 마나미, 마나미, 마나미.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를 집 안으로 옮겼다. 잔뜩 젖은 그를 현관에 내려놓았다. 흙탕물이 군데군데 묻은 얼굴을 보다가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람은 놀라면 우선순위를 잊게 된다. 경찰? 구급차? 씻기기? 그는 모든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 답지 않게 허둥거렸다. 마나미는 작게 신음했다. 토도는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어두운 방 안에 흙탕물 묻은 발이 발자국을 짙게 남겼다. 그는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았다. 소파에 그를 앉히고 볼을 쓰다듬었다. 체온을 전해주려 끌어 안았다.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그가 어릴 적에 몸이 약했다는 것을 깨닫고, 토도는 사색이 되어 일어나려 했다. 작은 앓는 소리와 함께 마나미가 눈을 떴다. 마나미, 하고 부드럽게 불렀다. 옛 연인이 제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날서린 빗방울처럼 찼다. 'Cosm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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